“밥 먹는 모습을 보고 싶다. 잘 적응하고 있는지 보고 싶다. 보육교사가 차별하지 않는지 알고 싶다. 집과 어린이집에서의 차이를 확인하고 싶다.”

최근 경기지역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긴 학부모들이 어린이집에 설치된 CCTV 영상 열람을 요구할 때 들었던 이유들이다.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설치됐지만 당초 목적 이외에 개인적인 궁금증까지 동반한 무분별한 CCTV 열람이 쇄도하고 있는 것이다.

행정당국의 지도점검과 안전점검, 놀이시설점검 등까지 포함해보면, CCTV는 당장이라도 치워버리고 싶은 족쇄인 셈이다.



▶학부모, “우선 CCTV부터 확인해 보자” =

지난 9월 이후 경기지역 어린이집 1만2천281곳에는 모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운영해야 한다.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 등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지만, 1년여가 지난 현재 당초 목적이 아닌 갖가지 이유로 CCTV 녹화 영상이 사용되고 있다.

경기도어린이집연합회 관계자는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설치된 것은 맞지만 현재 그 용도 외에 학부모들의 각종 궁금증 해소를 위해 이용되고 있다”면서 “행정당국까지 나서서 아동학대 확인이 아닌 목적으로 열람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CCTV는 동이 학대 또는 안전사고로 신체·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의심될 경우에만 열람이 가능하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밥을 잘 먹는지, 왕따를 당하지 않는지 등을 이유로 열람을 요구하고 있다.

화성시 한 어린이집 원장은 “어떤 학부모는 아이가 놀이터에서 어떻게 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영상을 공개해달라고 했다”고 말했으며, 또 다른 원장은 “가정과 어린이집의 생활을 비교하고 싶다는 열람 요청도 있었다”고 밝혔다.


▶보육교사 사생활 침해, 아동 개인정보 유출 등 논란 =

학부모들의 막무가내 요구로 CCTV 녹화 영상이 공개되면서 각종 문제점이 나오고 있다.

어린이집 원아와 보육교사 등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수원시에 위치한 한 어린이집은 최근 CCTV 영상을 학부모에게 공개했다가 곤혹을 치렀다.

이 어린이집은 아이의 팔에 멍이 들었다며 아동학대 이유로 CCTV 공개를 신청, 한 학부모와 함께 열람한 적이 있다.

녹화된 영상에서는 아이가 뛰어다니다가 넘어지면서 팔을 책상에 부딪치는 영상이 담겨 있어 아동학대 의혹은 해소됐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나왔다.

CCTV 영상을 확인하던 중 아무도 없는 보육실에서 여자 보육교사 한 명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경기도어린이집연합회 관계자는 “아동학대 근거를 찾다가 여자 보육교사가 옷을 갈아입는 장면이 나와 곤란을 겪는 사례가 많다”면서 “교사들 스스로 조심을 하고 있지만 별도의 탈의실이 없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CCTV 영상을 공개한 뒤에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학부모간 시비가 발생한 적도 있다.

의정부의 한 어린이집은 아동학대 이유로 CCTV 열람을 한 뒤 다른 학부모에게 열람 사실을 나중에 알렸지만 허락도 받지 않고 공개했다고 민원이 제기된 적이 있다.

시흥시의 어린이집은 한 학부모가 CCTV을 보고난 뒤 주변 학부모에게 열람 사실을 알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안 학부모들의 항의를 받았다.


▶전문가, “학부모 교육·완충 기구 필요해” =

전문가들은 CCTV 영상의 무분별한 공개를 막기 위해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황환옥 경복대 영유아보육과 교수는 “학부모들 사이 CCTV가 아동학대 등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문제”라면서 “어린이집 교사만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아동학대 등의 교육이 학부모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는 것도 한 방편”이라며 “관계도 좋아지고 아동학대에 대한 이해도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린이집과 학부모, 경찰 사이의 완충 기구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완정 인하대 아동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CCTV 열람을 막기는 불가능하다”면서 “현 상황에서는 CCTV 매뉴얼 구체화와 어린이집과 학부모, 경찰 사이 중계를 하는 완충기구 마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복진·오정인기자/bok@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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