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 수상 '네이팜 소녀' 규제받자 언론사가 문제제기

미군이 베트남전에서 정글을 불태우려고 투하한 네이팜탄 탓에 불이 붙은 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비명을 지르며 달려 나오는 베트남전 소녀의 1972년 사진.

언론 보도에서 최고의 영예로 거론되는 퓰리처상을 받은 이 사진을 페이스북이 어린이 누드라며 삭제해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노르웨이 최대 일간지 아프텐포스텐은 페이스북 경영자 마크 저커버그에게 이 조치를 비판하는 공개 질의서를 1면에 게재했다.

논란의 발단은 노르웨이 작가 톰 에이란이 '전쟁의 공포'라는 주제로 역사를 바꾼 7장의 전쟁 사진이라는 글에서 네이팜탄 소녀의 사진을 첨부해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었다.

아프텐포스텐은 에이란의 포스트에서 사진이 삭제됐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문제의 사진을 다시 자사 페이스북에 올려 페이스북을 다시 자극했다.

그러자 페이스북 측은 "사진을 삭제하거나, 모자이크 처리하라"고 아프텐포스텐에 요구했다.

페이스북은 "알몸으로 생식기나 둔부를 드러내거나 여성의 가슴을 노출한 사진은 삭제된다"고 자사의 원칙을 설명했다.

이에 아프텐포스텐의 에스펜 에일 한센 편집국장은 공개 질의서에서 페이스북의 인식 수준을 신랄하게 헐뜯었다.

한센 국장은 "아동 포르노물과 역사적 전쟁 사진을 분간하지 못하는 페이스북의 무능력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저커버그가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 심사숙고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분명히 권한을 남용해 내 고유한 편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한센 국장은 "언론은 출판에 앞서 모든 면을 고려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면서 "모든 편집자가 지니고 있는 이런 권리와 의무가 캘리포니아 사무실에서 만든 알고리즘 코드로 침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논란은 페이스북의 언론 분야에서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경계심도 덩달아 커지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미국 성인의 44%는 페이스북에서 뉴스를 얻는다는 퓨 리서치의 연구 조사결과가 올해 나왔다.

지난 5월에는 페이스북의 유행 소개 메뉴인 기즈모도(Gizmodo)가 보수적 뉴스사이트를 의도적으로 억압한다는 비난이 나오기도 했다.

견제가 강화되자 저커버그는 지난달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 연설에서 "우리는 정보통신 기업이지 언론기업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세상은 언론사가 필요하고 우리처럼 새 플랫폼을 제공하는 업체도 필요하다"며 "우리는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의 한 대변인은 이번 역사물 규제 사태와 관련해 "네이팜탄 소녀는 매우 상징적이라는 점을 알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 아동 누드 사진을 허용하고, 어떤 경우는 허용하지 않을지 구분하기란 어렵다"고 항변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안전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도록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 대변인의 말대로 누드 사진 때문에 발생하는 폐해도 종종 목격되고 있다.

이날 북아일랜드에서는 14세 소녀가 자신의 누드 사진이 삭제되지 않은 채 돌아다닌다며 페이스북과 사진을 올린 남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이 소녀의 변호사는 벨파스트 고등법원의 청문에서 "알몸 사진이 더러운 사이트에 자꾸 돌아다닌다"면서 "페이스북이 애초 게시를 막았더라면 사진이 돌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페이스북 측 변호사는 "삭제 요청을 받으면 사진을 항상 내리는 만큼 피해 배상은 기각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연합

▲ 아프텐포스트 한센 편집국장과 삭제가 된 사진. 아프텐포스트 홈페이지 캡쳐
▲ '네이팜 소녀'의 사진을 촬영한 AP통신 사진기자 닉 어트(좌)와 사진의 주인공 킴 푹(중앙). 사진은 2012년 독일 쾰른에서 열린 한 시상식 참여 장면. 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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