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청탁금지법(김영란법)과 함께 시작됐습니다.법이 시행된 지 2주가량 됐지만 기대와 우려가 교차합니다.나는 김영란법을 조건부 찬성합니다. 잘 다듬으면 청렴사회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 입니다.그런데 메워야 할 구멍도 곳곳에 보입니다.나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을 김영란법의 가장 큰 병폐(病弊)로 보고 있습니다.

3·5·10 문제점은 공감대만 형성되면 쉽게 고칠수 있습니다.그러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몸을 사리는 복지부동은 형태(形態)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후 공무원들이 민원인 만나기를 꺼려한다고 합니다. 민원 전화를 서로 안 받으려고 돌리는 ‘뺑뺑이’까지 생겼답니다.자기방어를 위한 민원인 접촉 기피현상이 나타난 거죠.김영란법이 아니더라도 투서나 내부고발로 구설에 오르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게 공무원이다 보니 민원인 자체를 안 만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그런데 사람을 안 만난다고 하니 어떡해야 할까요.공무원들만 탓할 수는 없겠지요.김영란법으로 관가와 민간간의 소통 경로가 경색되어서는 안 됩니다.걱정스러운 것은 복지부동과 보신주의가 새로운 공직문화로 전이되는 것입니다.공무원이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서 김영란법 ‘우산’ 속에 숨어들고 있다고 합니다.복지부동 없이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는 제도 보완이 3·5·10보다 시급 합니다.김영란법을 조건부 찬성하는 결정적 이유이지요.

요즘 여의도 정치권을 우악스럽게 표현한다면 개판입니다.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하고 큰소리치더니,뽑아주니 딴짓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은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며 여의도 정치가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습니다.양당(兩黨) 힘겨루기에 신물을 느낀 국민들은 3당 체제를 만들어줬고 영남에서 야당 후보를,호남에서 여당 후보를 선택하며 변화를 기대했습니다.그러나 정치권은 국민이 원하는 변화를 외면하고 서로 총질하기에 바쁩니다.서민들은 먹고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도 자신들이 속한 세력을 위해,정파를 위해 싸우기 바쁩니다.내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어 더 극성일 텐데 걱정입니다. 최근 들어 남경필 경기지사가 대권후보로 급부상한 것은 ‘핵무장준비·모병제·수도이전론’ 같은 이슈선점 효과도 있지만 밑바닥에는 연정(聯政)과 협치(協治)가 있기 때문입니다.국민들은 여야를 떠나 싸우는 정치를 혐오합니다.연정과 협치가 시대정신입니다.여의도 정치가 한심하다 보니 정파에 속하지 않고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는 외국 정치인을 차라리 수입하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옵니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지(同志)가 있습니다. 혈기방장한 20대에 지방신문 기자로 만났습니다.그는 노조위원장,나는 사무국장을 맡아 불의에 맞서 싸우다 ‘해고’ 당하기도 했습니다.신문사 앞 콘크리트 바닥에 천막을 치고 복직 투쟁을 했던 기억이 새록한데 벌써 2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동료들이 퇴근하고 불 꺼진 편집국을 바라보며 옷소매에 눈물을 훔치기도 했지요.흐르는 눈물을 주체 못해,서로 눈치 챌까 봐 하늘의 별을 보자는 핑계로 천막에 누워 울음을 삼켰던 동지입니다.우여곡절을 겪으며 경쟁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이어가다 같은 시기에 편집국장을 했던 것을 보면 보통 인연은 아닌가 봅니다.그가 며칠 전 편집국장직을 내려놨습니다.시원섭섭할 것입니다.몇 달 전 내 마음이 그랬으니까요.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파란만장했고,질릴 만큼 뜨거웠던 여름을 이겨 내고 우리는 인생의 가을 문턱 앞에 서 있습니다. 정확히는 여름과 가을 사이입니다.이제는 화려한 가을을 준비합시다.” 도종환 시인의『가을 오후』도 함께 전합니다.

고개를 넘어오니/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그랬느냐는 내 말에/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입가로만 살짝 웃었다/웃는 낯빛이 쓸쓸하여/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고/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안았다/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이 칼럼이 나간 날 아침 그는 휴가지에서 가을을 그리고 있을 겁니다.나도 지난 주말 1박2일 제주도 출장길에서 가을을 그리고 왔습니다.

김광범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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