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직후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역사를 세월호 참사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도록 국가 대 개조를 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큰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국민들이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만연된 부조리와 부패가 조금은 개선될 지도 모른다는 아주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해피아’, ‘해수피아’ 처럼 한국사회 곳곳에 고착되어 있는 ‘관료’와의 결탁구조가 조금 나아지질도 모른다는 기대도 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한국사회는 어떻게 변했을까? 필자의 단견인지 모르겠지만, ‘해수피아’ 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곳에 관료들이 직접 낙하산을 타고 자리 잡거나 적어도 그들 입김에 좌지우지 되고 있는 도리어 더 심한 ‘관피아’의 나라가 된 듯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미르 재단’이나 ‘K스포츠 재단’ 관련 보도들을 보면, 대한민국은 ‘관’과 ‘관료’들의 한마디면 모든 국민이 찍소리 못하고 신속하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군대 같은 느낌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 사업’에 목매달고 있는 대학이나 기업들을 보면 이 나라가 혹시 ‘쌍팔년도(?)’로 역주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최근에 또 대한민국을 개조하겠다는 역사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직사회 아니 한국사회 전체를 통째로 투명하고 깨끗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김영란법’, 아니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이다. 작년에 국회에서 통과되어 지난 9월 28일부터 실시된 이 법의 위력은 대단하다. 물론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부끄러운 부패수준이 가진 현실을 감안한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때문에 어느 누구도 법 취지나 명분에 토를 달 수 없는 거룩한 법이지만, 이 법이 어떻게 운용될 것인가를 두고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솔직히 몇 조항 안 되는 법률을 놓고 수백 페이지의 해설서와 ‘Q&A’ 자료집들이 배포되고, 공직자는 물론이고 사실상 전 국민이 연일 ‘깨끗하게 살기 위한 정신훈화(?) 교육’을 받고 있다. 정부기관이나 민간 기업들이 전문가 불러 놓고 단체로 교육받는 모습을 보면 오래전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던 무슨 ‘국민훈화교육’이나 ‘집체교육’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이 법의 시행주체인 국민권익위원회의 유권해석만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누구든 이 법에 한번 걸리면 처벌의 크기를 떠나 ‘부도덕 한 놈, 부패한 놈’으로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운 상태에서 국민권익위원회의 해석은 ‘선·악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고 국민권익위원회는 절대 권력기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관료국가에서 관료는 규제가 곧 존재의 이유일 수밖에 없어 법 취지를 넘어 매우 엄격하게 확대 해석·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학생이 교수에게 ‘캔 커피’도 주어서는 안 되고 스승의 날 ‘카네이션’도 안 된다는 유권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생화 카네이션은 유가적 가치가 있어 안 되고 종이 카네이션은 유가적 가치가 없으므로 된다는 웃픈(?) 논리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많은 선생님들이 생화카네이션 받아 돈으로 바꿔 썼다는 것인지 반대로 유명 화가가 종이에 그린 카네이션은 선물해도 괜찮다는 것인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 우려되는 것은 이처럼 국민들의 일상생활 하나하나의 위법성을 정부·관료들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김영란 법’은 관료/공직사회를 깨끗하게 하겠다는 취지와는 반대로 국가와 관료들에게 ‘선·악’이라는 이분법으로 국민들을 사생활을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주는 법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막강한 권력을 가진 공직자는 역설적으로 부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진리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개혁하겠다던 ‘관피아’의 폐해가 도리어 더 심해진 것처럼 ‘김영란 법’ 이후 공직관료들의 힘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고질병은 모든 사회가 정부와 관료집단에게 집중되는 병목현상 때문이다. 뇌물이나 청탁 같은 부정부패 역시 궁극적으로 정부나 관료 더 나아가 정치권력의 독점력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란 법’은 부정부패의 핵심을 개혁하기보다 도리어 심화시키는 ‘부메랑 효과’를 유발할 수도 있다.

이런 역설적 가설이 기우에 그치기 위해서는 우선 공직자들의 어깨에 들어간 힘부터 빼야 할 것 같다. 그래야 2016년 9월 28일 이전과 다른 이후의 대한민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