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년 다산 정약용이 신유사옥으로 전남 강진으로 귀양을 가면서 부부 간의 생이별이 시작된다.

유배 7년째 남편이 살아 돌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1806년 부인 홍씨가 특이한 선물을 귀양지로 보낸다. 바로 시집올 때 입었던 붉은색 비단치마였다. 홍씨는 그동안 편지와 함께 남편의 옷을 만들어 보내거나 평소 좋아하는 찰밥을 지어 보내기도 했지만 좀 더 특별하고 남편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고, 또 다른 여인네에게 한눈을 팔지 말라는 뜻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이 비단치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마음을 잊지 말아달라’는 의미를 담은 선물임을 알아차린 다산은 치마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차에 치마를 재단해 4년에 걸쳐 두 아들과 후손들이 간직할 당부의 경구(警句)를 기록해 보낸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하피첩(霞?帖·보물 1683-2호)’이다.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 경계의 글인 셈이다.

또 딸에게는 치마 자투리에 매화와 새를 그린 그림 ‘매화병제도(梅花倂題圖)’를 보냈다. 이는 다복한 가정을 꾸미고 집안이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실학박물관은 내년 3월26일까지 ‘하피첩의 귀향’ 특별전을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하피첩은 총 4첩으로 알려졌으며 이날 특별전에는 현재까지 발견된 3첩과 매화병제도 등 관련 유물 20점을 함께 공개한다. 하피첩은 총 94장으로 재단된 실제 부인의 치마는 84장, 종이 10장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는 ‘다산 가족이야기’ ‘하피첩, 노을빛 치마에 그리움을 담다’ ‘하피첩의 귀향’ 등 총 3부로 구성됐으며 다산이 홍씨 부인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유배를 간 뒤 가족을 그리워한 사연 등 다산의 생애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영영 사라진 것으로만 알았던 하피첩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그 모습을 드러내 더욱 특별하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여름, 홍수로 인해 물이 허리까지 차, 집이 통째로 쓸려가는 난리통에도 4대손인 정규영씨가 목숨을 걸고 다산의 기록을 구해냈다. 5대손인 정향진씨는 홍수로 모든 것을 잃자 서울, 안산, 안양 등으로 이사를 다녀야 했고 이 와중에 발발한 6·25 한국전쟁 당시 수원역에서 하피첩을 잃어버렸다. 수십년이 지난 2006년 우연히 폐지줍는 할머니 수레에서 발견했다는 한 소장자가 TV 프로그램에 공개하면서 세상에 다시 나왔고 2010년 보물로 지정됐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전 대표의 파산으로 국가에 압류됐고 지난해 경매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이 7억5천만 원에 사들여 실학박물관에서 특별전이 개최될 수 있게 됐다.

박물관 관계자는 “고향을 떠나 있던 ‘하피첩’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념하는 뜻 깊은 전시”라며 “일반 대중들이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를 연출했다. 시대를 뛰어넘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느껴보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문의 031-579-6000.

김동성기자/estar@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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