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4일 서울행정법원은 벌집 제거 중 사망한 고(故) 이종태 소방관의 유족들이 벌집제거로 인한 경우도 순직으로 인정해달라는 소송에서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벌집 제거 중의 사망이 공무상 사망인 것은 분명하지만,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순직으로까지 인정되는 것이냐에 대한 법리적 쟁점을 둘러싸고 법원까지 갔던 것이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순직에 해당하려면 ‘경찰·소방 공무원으로서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소방관의 벌집제거가 국민의 생명?재산보호와의 직접적 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인사혁신처는 말벌퇴치 작업은 위험직무가 아니어서 이종태 소방관의 사망은 순직이 아닌 ‘공무상 사망’으로만 인정했으나, 법원은 등검은말벌집 제거작업은 토종 말벌집 제거에 비해 훨씬 위험성이 큰 업무여서 생명ㆍ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성을 수반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순직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벌집을 제거하는 것이 소방관의 직무에 포함되고, 그 직무가 위험하다면 벌집제거 중 사망한 사고는 순직으로 처리해주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더 근본적인 질문은 과연 벌집을 제거하는 일을 소방관의 직무에 포함시켜야 하는지에 있다.

경기도 소방본부의 경우를 예로 들면, 2015년 하루 382건의 구조활동 중, 교통사고?산악사고 등을 포함한 구조사고가 135건이며, 위치추적?벌집제거 등 생활안전은 246건이었다. 그런데 그 중 벌집제거가 80회에 이른다. 소방관들이 전체 출동 중 20% 넘게 벌집제거를 위해 출동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약 39회에 이르는 인명 갇힘 중 몇 번이 일반적인 잠긴 문을 따주기 위한 것인지 수치가 분명하지 않지만, 절반만 하더라도 약 20회이다. 벌집제거와 문 따기를 위한 출동을 합하면 거의 30%를 넘는다.

각 소방본부가 지방정부의 소속으로 되어 있다 보니 선출직인 시도지사의 의지에 따라 업무범위가 달라질 수 있으나, 국회와 국민안전처 차원에서 소방관의 업무범위를 분명히 해줄 필요가 있다.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말벌들이 집안에 들어 온 경우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까지 소방관이 출동해서 제거조치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벌집을 제거하는 민간업체를 활용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공론화를 통해 이루어진 사회적 합의에 따라 소방관 업무의 선을 그어주어야 한다.

잠긴 문을 열어주는 것도 똑같다. 문 따는 것은 열쇠수리업체에 일정한 비용을 주고 처리하는 것이 맞지 소방관들이 출동해야 하는 일은 아니다. 물론, 일반적인 수리업체가 해결하기 곤란하거나 잠긴 건물 안에서 급박한 인명구조가 필요한 경우라면 소방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 위험하지 않은 경우까지 119에 전화만 하면 출동하는 것은 국력의 낭비로 보인다.

특히 소방이라는 공공재는 벌집제거나 잠긴 문 따기 등 위난의 현실성이 낮은 상황보다는 화재의 발생이나 응급환자 발생 등 더 중요하고 긴급한 상황에 투입되어야 한다. 벌집제거나 잠긴 문을 열기 위해 출동한 사이, 더 급박하고 심각한 위난 상황이 발생하면 어찌할 것인가. 그나마 소방에 대한 국가적 지원도 충분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제한된 인력과 제한된 장비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벌집제거나 문 따기 등에 소방이 출동하려면 현존하는 실질적 위험이 존재할 것을 요구한다. 원칙적으로 위험이 현존하지 않고는 출동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벌집을 제거하거나 잠긴 문을 열어주는 것은 공적영역보다는 민간의 영역에 속한다. 즉, 벌집을 제거하는 업체나 잠긴 열쇠를 따주는 열쇠수리공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고 서비스를 제공받으면 되는 일인 것이다.

한편, 각 지방정부들이 소방관들에게 지급하지 않고 있는 초과근무수당만 해도 1902억 원에 이른다. 소방이 지방정부사무이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당한 보수와 장비를 주고, 소방관들이 꼭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항이나 도로 건설하는 일보다 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류권홍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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