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살아가면서 몇 번의 기회는 주어진다고 한다.

그것이 인연이든, 직업이 됐든 삶의 모습을 바꿀 기회는 어떤 형태로든 찾아오기 마련이다.

평택시 서탄면의 작은 공방에서 국악기를 만드는 김윤겸(38) 씨는 원래 촉망 받는 젊은 국악 연주자였다.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에서, 삶의 모습을 바꿔 악기를 만드는 제작자의 길에 들어선지도 벌써 3년차.

새로운 영역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변화의 기회를 잡아온 김윤겸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특별한 계기랄 건 없어요. 인생의 모토가 국악 외길도 아니였고, 어떻게 보면 한 가지에 올인하기 보다는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더 직성에 맞았던 것 같아요.”

김윤겸 씨가 처음 국악을 접한 것은 1994년 고등학교 1학년, 금산농고(현 금산산업고등학교) 농악단에 입단하면서부터다.

당시에는 그저 신명나게 두들기고 한바탕 노는 것이 즐거워서 시작하게 된 국악이 직업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그는 한국민속촌의 농악단에 들어가며 본격적인 연주자의 생활을 시작한다.

당시 한국민속촌은 안정적인 근무여건으로 많은 국악인들이 선망하는 직장이었다.

“운이 좋았죠. 고3 때 취업반에 속해 나간 후로, 군 복무를 마치고서도 2001년까지 그 곳에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하지만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망은 계속 마음 속에 있었나봐요.”

민속촌을 나온 후에는 알고 지내던 선·후배들과 팀을 꾸려 전국을 무대로 연주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민그러던 중 그는 중장비 기사로 갑작스럽게 길을 바꿨다.

포크레인, 지게차, 덤프트럭 등 공사현장에 사용되는 장비들은 다 한 번씩은 접해봤다.

돈 때문은 아니였다. 단지 새로운 경험이 하고 싶었을 뿐.

“그렇게 오래 하지는 않았어요. 이후에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대학생활에 대한 동경으로 스물 여덟이라는 늦은 나이에 백제예대 전통예술공연과에 들어가게 됐죠.”

2년의 학부생활과 다시 또 2년의 조교 생활까지 4년을 대학에서 보낸 그는 이번에는 축제기획자가 되어 평택과 인연을 맺게 된다.

“평택문화원에서 한 6년 근무하다가, 새롭게 맺은 인연을 통해 지금은 이렇게 악기를 만들고 있네요.”

누군가가 만든 악기를 두들기기만 하다가, 직접 악기를 만드는 것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일이었다.

하지만 저마다 다른 연주자들의 취향에 맞는 악기를 제작하는 일에는 어렸을 적부터 몸에 밴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됐다고 한다.

“사실 요즘에는 어느 정도 일이 손에 익다보니 다시 새로운 쪽에도 관심이 가기도 해요. 그래도 이곳에서 제가 만족할 만큼의 성과를 거두기 전까지는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겠죠.”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매순간 새로운 배우고 익히는 일이 어찌 즐겁지 않겠냐는 공자의 말씀이다.

전도유망한 국악인에서 이제는 전통 국악기의 맥을 잇는 김윤겸 씨의 삶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의 연속이였다.

신창균·황영민기자/chkyun@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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