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홍사용의 ‘나는 왕이로소이다’ 또는 소설가 나쓰메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패러디하려는 것이 아니다. 2인자의 서글픔, 애환, 처신 그리고 리더십에 대해 평소 생각했던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여기서 2인자란,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보스를 두고 직함에 부(副), 차(次)가 붙은 분들 뿐아니라 대통령 중심제의 국무총리,시진핑 주석밑의 리커창 총리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오래 전 필자가 부시장으로 발령을 받게 되자 공직선배가 ‘부(副)자가 명심해야할 금과옥조’를 전수하였다.그분은 부시장을 여섯번 지내며 직업이 ‘부단체장’이라고 불리는 전설이었기다. 메모하면서 경청했다.

① 황제는 장군의 승리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너무 나대지 말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라. 그래야 기특하게 본다 ② 평상시에는 아부하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직언도 해야한다. 그래야 호구 잡히지 않고 오래 갈 수 있다 ③ 쓴소리를 쓰지 않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 2인자다.

박수 건성건성치고 짝다리 짚었다고 한방에 훅 간 북한의 장성택을 보면서 2인자의 길은 멀고도 험한 길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2인자의 대명사인 JP는 “1인자는 2인자를 소외하거나 무력화 하고 싶어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2인자는 첫째, 절대 1인자를 넘보지 말고 품격을 유지하면서 고개를 숙여야한다. 둘째,성의를 다해서 보좌하는 인상을 주면서 아무리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고 견뎌야 한다. 진정한 인내는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게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라고 했다. 매우 공감이 간다.

2인자가 1인자와 함께 역사를 함께 쓴 사례도 많이 있다. 모택동과 주은래의 경우이다. 미·중(美-中)수교의 물꼬를 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모택동이 없었다면 중국혁명의 불꽃은 점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은래가 없었다면 중국은 모두 타버리고 재만 남았을 것”이라라고 주은래를 높이 평가하였다.

사후 등소평으로부터 ‘공(功)이 칠(七)이고 과(過)가 삼(三)’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모택동을 평생 보좌하면서 오늘날의 중국의 발판을 다진 주은래는 사실 중국 공산당 초기에는 모택동보다 더 높은 직위에 있었다. 장개석 밑에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택동의 자질을 높게 보고 자신을 낮추면서 문화대혁명의 광풍에서 숙청인사를 보호하고 홍위병으로부터 중국이 덜 망가지도록 최선을 다한 주은래의‘심모원려(深謀遠慮)’를 역사가들은 기억하고 있다. 2인자의 성공적인 롤모델이다.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모택동과 주은래의 조합은 둘 다 격조있는 한시(漢詩)를 쓸 수 있는 문학적 소양을 공유하였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모택동은 엄청난 독서가일 뿐 아니라 ‘심원춘.설(沁園春.雪)’같은 웅장하고 야심만만한 한시를 지었고 주은래는 1919년 짧았던 일본 유학 시절, 조국행을 결심하고 교토의 경승지 아라시야마(嵐山)에 봄비에 젖은 벚꽃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한편의 시를 남긴다. ‘소슬비 내리고 안개 짙더니 구름 뚫고 비친 한줄기 빛 더욱 아름다워라. (중략)세상 모든 진리는 좇을수록 알기 어려워도 우연히 본 한 점의 광명,참으로 아름답도다.” 그가 젊은 시절 ‘우중람산(雨中嵐山)을 읊었던 자리에는 일본인이 세워준 시비(詩碑)가 서 있다.

1인자는 고독하고 불안한 자리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엉뚱한 일을 하기도 하고 주변을 희생하면서까지 권력을 유지한다. 진정한 2인자는 장기적으로는 옳은 길로 이끌되 1인자와의 관계형성에 무리가 없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대의를 위해 1인자에게 굴신하여 결국에는 대업을 이뤘던 2인자들은 ’과(過)’는 역사의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고 ‘공(功)’은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키우는 혜안을 가졌던 인물들이다

오늘날 2인자는 더 이상 최고위직 바로 밑의 고위직만을 뜻하지 않는다. 조직 곳곳에 존재하는 아래쪽 구성원도 2인자다. 2인자는 1인자로 가는 교두보가 아니다. 그 자체로서 훌륭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2인자는 개인 뿐 아니라 조직과 국가의 번영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어느 날 문득 결정적 역할이 느껴지는 감동! 그것이 바로 2인자의 무기이다.

전 국민이 멘붕에 빠져있는 지금 1인자, 2인자 운운하는 이 글도 부질없음을 느낀다. 막장드라마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을 것이다. 검찰에 출두하는 최순실씨의 모습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오버랩된다.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생중계를 참모들 곁에서 쪼려린채 지켜보던 모습은 어떤 권위의식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국가를 위해 매진하는 대통령, 부통령, 국무장관, 합참의장 모두가 성공한 2인자였다.

이인재 전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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