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에 궁금했던 것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창조경제’ 같이 모든 국가정책에 창조라는 이해 못할 문구와 ‘통일은 대박’ 이라는 도무지 앞뒤가 어울리지 않을 얘기들부터다. 경제를 창조적인 생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얘기는 다소 듣기부터 거북했어도 억지라도 붙일 수 있었다. 그러나 대박이라는 말은 구어체로 그저 개인사나 친구사이의 수다 섞인 자리에서나 감탄과 마음에 와 닿는 형편에 쓰이던 말이었다. 그래서 거창하고 어찌보면 성스러워야 할 통일에까지 그리 간단하게 붙여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려서 그럴까. 하지만 그 때는 대통령의 입에서 발표되고 “뭐 그럴 수도 있겠다”며 애써 그리고 태연히 넘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그 후로 되도 않을 인물들이 청와대에 쑤셔 박듯 들어갔고 그 사람들은 자신이 지닌 능력에 못 이겨 갖은 스캔들로 결국은 창피함의 누더기를 스스로 뒤집어쓰고 좆기듯이 지금껏 나오고 있다.

물론 그 빈자리들을 누군가 채워 다시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숨 막힐 참담함의 시간에도 문고리니 뭐니 하는 사람들은 그저 신문 앞면에 제대로 된 얼굴조차 나오지 않고 옆모습이나 파일에 저장된 과거의 모습으로 버텨왔다. 그리고 지금은 맨얼굴로 이름 앞에 전(前)자 붙여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신세다. 몰랐을까. 이리 될 줄을. 그러니까 국정은 누군가에 의해 대통령의 본심과는 틀어져 발표됐고 대통령의 능력과는 분리돼 이런 국정들이 잘못 가고 있었다. 우선 말해두지만 청와대의 답답함에 나 역시 가까운 거리에서 이러저러한 말을 할 형편이 아니어서 지금의 민망함이나 거북한 마음은 매한가지다. 물론 이런 일들이 가능한 측근들도 자리에 껌딱지 붙어 입을 닫고 있었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알고 있다.

이러한 고위관리들의 계산은 맞아 떨어졌지만 스토리의 끝은 보다시피 나락이다.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인 새누리당 조차 이 파문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에 내부가 갈라졌다. 비박계는 이정현 대표 등 친박 지도부의 사퇴를 요구했고, 여기에 친박계 일부도 동참했을 정도다. 주요 당직자들은 지도부의 거부에 사표를 냈다. 당 주류인 친박계의 단일 대오에 균열이 생기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국방에서부터 정치, 대통령의 개인사에 이르기까지 얘기는 마치 장맛철의 뚝 무너지듯 그리고 언제 이 비가 그쳐도 생채기 난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을 일이 분명해 지고 있다. 추락하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10.4%를 기록했다는 여론 조사 결과도 이제는 의미 없다. 언제 그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질 것인지는 가는 시간만이 말해 주고 있다.

얘기가 점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다. 삼성이 독일로 보낸 35억이 최순실 딸 정유라가 타는 명마(名馬) 구입·관리에 쓰였다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명마가 먹었을 독일산 당근에는 멀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꼬박꼬박 낸 혈세가 섞여 들어갔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러니까 재벌들이 알아서 긴 죄 또한 컸다는 결론이다. 물론 국가 주도의 개발정책에 편승해 성장해왔던 한국 재계의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볼 수도 있다. 때 마다 정치자금 조성 창구가 돼 몸살을 앓는 등 정경유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제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경영과 회계를 투명하게 해야 이런 일에 말리지 않는다. 재계가 양심선언이라도 해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규명해 나가야 한다. 사실은 얘기가 여기서부터 시작됐어야 했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은 신임 국무총리에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지명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 등을 역임했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등 야권은 “최순실 내각 정리하라고 했더니 또 제2차 최순실 내각을 만든 느낌”이라고 폄하 하고 있다. 나는 이 즈음에서 앞으로의 모든 얘기는 이렇듯 꼬여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거국내각을 외치다 갑작스럽게 여러 이유를 대면서 지금의 혼란을 즐기는 듯한 야권의 그 모습들이 그러하고 소위 잠룡이라는 대권을 꿈꾸는 여러 사람들의 욕심이 앞으로 이 어지러움을 더욱 실타래같이 휘감을 일이다. 문제는 국민들이 과거 자유당시절의 혼란에 갑자기 뛰어든 군사정권을 받아들였듯이 자칫 이 정국을 틈타 대한민국을 더한 수렁에 빠트릴 수 있는 세력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국민들은 북한의 위협과 어지러운 미국의 대선결과, 그리고 당장 직면한 국내정치에 이르기까지 모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얼마 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주최 측 추산 2만명이 참석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린 것을 시작으로 주말마다 서울 도심과 전국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집회 때 경찰은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살수차를 현장에 배치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회 해산 통보 방송 때는 ‘나라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당장 위험한 집회의 안전한 해산을 위한 말이었지만 지금은 분명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시련을 이겨나가야 한다. 야당 역시 원하던, 원치않던 중요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국민들은 이 위기 국면의 야당이 보일 수권능력에 주목할 것이다. 차분히 그리고 이성적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 성경은 적고 있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구하라’.

문기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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