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일등공신 원균 장군 묘


임진왜란 때 이순신에 이어 제2대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원균(1540~1597) 장군 묘는 평택 도일동 산82에 있다.

전쟁이 끝나고 18명의 선무공신이 책록되었다. 1등에는 이순신, 권율, 원균 세 사람이 뽑혔다. 선조실록 37년 6월25일 기록은 “이들은 모두 조금씩 실책이 있으나 그것은 부득이한 일이었는지라 세 장군을 1등에 책록함이 가하다”고 적고 있다. 이처럼 당시의 평가는 차별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순신과 원균에 대한 평가는 천지차이다. 이순신은 국난을 극복한 민족의 성웅으로, 원균은 무능과 모함의 대명사로 여기고 있다. 역사는 후대 사가들에 의해 왜곡되거나 새롭게 평가될 수도 있다. 필자는 원균 장군이야말로 실제보다 지나치게 폄하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

원균은 원주 원씨로 평택 도일동에서 병마절도사를 지낸 원준량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도일동 원주 원씨 가문은 대대로 무인 집안이었다. 원균도 무인 혈통을 이어받아 28세 때 무과에 2등으로 합격하였다. 그는 북방에 있을 때 여진족을 토벌하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 당시 조정은 왜군 침입에 대비한다며 원균을 경상우수사로 임명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불과 2개월 전이다. 반면에 이순신은 1년2개월 전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여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다.

1592년 4월14일 마침내 왜군이 부산포로 쳐들어왔다. 경상좌수영을 지키고 있던 박홍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쳤다. 부산포와 경상좌수영을 장악한 왜군은 경상우수영으로 진격을 서둘렀다. 그들의 전략은 육군은 빠르게 북상하고 이에 필요한 물자는 해안을 통해 보급하는 것이었다. 원균은 매복 작전을 통해 적의 진격을 막았다. 이순신과 원균의 연합함대가 최초로 적을 무찌른 것은 5월7일 옥포해전이다. 왜군이 부산에 상륙한지 24일만이니 그동안 원균이 홀로 적을 막아내고 있었다. 만약 원균이 이를 지켜내지 못했더라면 오늘날 이순신도 없을지도 모른다. 또한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변했을지 모른다.

조선 수군이 해전에서 연전연승하는 가운데 조정에 장계를 올리는 문제로 원균과 이순신은 크게 다툰다. 원균은 누구의 공이 크든 함께 싸워 이겼으니 공동으로 올리자는 것이다. 반면에 이순신은 전라좌수영의 함대가 주력이니 그 공이 크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반목이 깊어졌다. 이순신이 초대 삼군수군통제사로 임명되자 원균은 반발하였다. 그러자 조정은 원균을 충청병사로 임명하여 둘을 떨어뜨려 놓았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이순신으로 하여금 부산진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순신은 적의 간계에 속아 병선을 움직여 나가다가 도리어 해를 당할 것이라며 출병을 거부하였다. 그러자 선조는 이순신을 하옥하고 그 후임으로 원균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이순신에게 했던 것처럼 부산으로 출병할 것을 명령하였다. 원균은 육군이 먼저 공격하여 적의 후방을 교란하면 수군이 출병하겠다는 건의를 하였다. 그러자 도원수 권율이 원균을 연행하여 곤장을 때렸다. 그리고는 곧장 출전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할 수 없이 원균은 전 함대를 이끌고 출전하였다.

그러나 왜군의 유인작전에 말려 참패하고 말았다. 퇴각 명령을 내렸지만 퇴로까지 차단된 상태였다. 배에서 내려 육지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적의 매복병에 걸려 원균, 이억기 전라우수사, 최호 충청수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병사들이 전사하였다. 항상 아버지 옆에서 용감히 싸웠던 원균의 외아들 원사웅도 같이 전사하고 말았다. 이것이 칠전량 전투의 패전이다.

장군이 전사하자 장군의 말이 장군의 신발을 입에 물고 고향까지 수 천리를 달려와 장군의 전사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기진하여 곧 죽고 말았다. 가족들은 갈마음수형 명당을 찾아 시신 대신 신발을 묻고 장군의 묘를 만들었다. 묘지 아래에는 말을 묻어 애마총을 만들어 주었다.

시신 없는 무덤이라 발복이 있을 수 없다. 설사 발복이 있더라도 발복을 받을 후손이 없는 처지다. 만약 장군의 후손이 있었다면 그토록 매도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 빨리 장군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되기를 바란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