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 청풍 김씨 김인백처 안동 권씨 묘

청풍 김씨는 조선 중기 이후로 크게 번창한 가문이다. 특히 효종·현종·숙종·경종·영조·정조 시대에 정승 8명, 대제학 3명, 왕비 2명을 배출하였다. 이중 3대 정승, 부자 영의정을 내어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3대 정승을 낸 집안은 청송 심씨, 달성 서씨, 청풍 김씨 뿐이다. 이처럼 청풍 김씨가 명문이 된 것은 의왕 고천동 산31에 위치한 13세손 김인백의 처 안동 김씨 묘 때문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풍수가들은 이 묘를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로 평가 해왔다.

이 묘에도 유명한 전설이 있다. 본래 이 자리는 부자인 석씨네 집터였다고 한다. 어느 날 천문지리에 밝은 도승 두 사람이 팔도 유람을 하다가 이 곳을 보고 “천하대지로구나”하며 감탄하였다. 이들은 명당의 소응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몰래 마루 밑에 땅을 파고 솔잎을 묻어 두었다. 그리고 1년 후에 다시 와서 솔잎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확인하자고 하였다. 만약 황금빛으로 변하면 명당이 분명하다는 뜻이 된다.

마침 이 집에 놀러왔던 김인백의 3남 김극형(金克亨)이 이들의 행동을 몰래 지켜보았다. 그는 도승들이 오기로 한 날보다 일찍 와서 마루 밑을 파보았다. 그러자 솔잎이 황금빛으로 변해 있었다. 명당이라는 것을 안 그는 썩은 솔잎을 주워다 황금빛 솔잎과 바꿔 놓았다. 정확하게 1년이 된 후 두 도승이 와서 마루 밑에 묻어둔 솔잎을 확인해보니 썩어 있었다. 그들은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른 곳으로 멀리 떠나갔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에 큰 불이 났다. 그러자 석씨네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이 틈을 타서 김극형은 석 부자를 설득하여 집터를 매입하였다. 그리고 어머니 안동 권씨가 돌아가시자 이곳에 장사지냈다. 그 뒤 발복이 시작되었다. 본인은 정5품인 공조정랑이 되었다. 아들 김징(金澄)은 이식에게 글을 배워 문과에 급제하여 동부승지와 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징의 장남 김구(金構)는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형조·호조·예조·병조·공조·이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한 후 우의정에 올랐다. 차남 김유는 박세채의 후계자로 이조참판을 거쳐 대제학을 지냈다.

김구의 아들 김재로(金在魯)는 영조 때 영의정만 4차례 역임하였고, 그의 아들 김치인(金致仁)은 정조 때 영의정을 하였다. 이로서 김구-김재로-김치인 등 3대가 정승을 지냈다. 한편 김유의 장남 김약로(金若魯)는 영조 때 좌의정, 차남 김상로(金尙魯)는 영조 때 영의정을 하였다. 김희로의 손자 김조수는 정조 때 좌의정을 역임하였다. 이처럼 4대에 걸쳐 6명의 정승을 냈으니 이 집안을 4대6상(四代六相)이라고 부른다. 이후로도 수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근대의 인물로는 김윤식과 김규식이 있다.

이 묘의 주산은 오봉산(210m)이다. 속리산에서부터 김포 문수산까지 이어지는 한남정맥 상에 있다. 광교산(582m)과 백운산(566m)을 거쳐 지지대고개를 지난 다음 일으킨 산이다. 한남정맥 상에 있는 산인만큼 비슷한 높이의 다른 산에 비해 기가 세다고 할 수 있다. 오봉이란 이름은 봉우리가 다섯 개라 하여 붙여졌다. 봉우리를 모두 귀인으로 보았다. 본래 5명의 정승을 배출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6명이 나와서 의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낙엽이 떨어진 겨울철에 보니 낮은 봉우리가 하나 더 있어서 6정승이 나온 배경을 알았다.

오봉산 정상에서 묘까지 이어지는 맥은 변화가 매우 활발하다. 변화가 활발하다는 것은 그만큼 기운이 세다는 뜻이다. 특히 의왕시청에서 의왕도서관으로 이어지는 고개는 잘록하게 생겼다. 풍수에서는 이를 ‘과협’이라고 하는데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허리다. 역도선수가 허리를 잘록하게 묶어야 힘을 쓰듯 산도 잘록한 과협이 있으면 기를 모을 수 있다. 이런 곳에서 대혈을 맺는다. 묘에서 오봉산까지 맥을 따라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커다란 용이 꿈틀거리며 내려오는 듯하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맥을 밟으며 등산을 해보기 바란다. 아마도 몸에 좋은 기가 충전될 것이다.

묘가 있는 지형은 닭 둥지처럼 오목하게 생겼다. 이를 풍수에서는 ‘와혈’(窩穴)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필자는 다섯 마리 봉황이 서로 집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오봉쟁소형’(五鳳爭巢形)으로 보고 싶다. 이때 다섯 봉우리는 봉황이고 와혈은 둥지다. 사람이나 사물은 경쟁 상대가 있어 적당한 긴장을 해야 발전하는 법이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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