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의 촛불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아이 어른 남녀학생 회사원 구분없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치며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호왈(呼曰) 100만이다. 그러나 어찌 100만뿐일까? 보이는 촛불은 100만이지만 안 보이는 촛불은 수천만일 것으로 여겨진다. 그만큼 시대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비극이라고 해야 할지 희극이라고 해야 할지도 판단이 서지 않는 전대미문의 국정 농단사태가 몰고 온 격랑이었다. 박 대통령이 뭐라고 변명하건 어느 한 요녀의 농간에 대통령이 놀아난 흔적들이 밭고랑처럼 선명하게 들어나는 모습을 보고 어느 국민이 분노하지 않고 베길 수 있을까? 그것도 어쩌다 만난 여인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박근혜 양을 향해 갖은 감언이설로 접근하여 환심을 샀던 요승(妖僧)과 같은 정체불명의 최태민이란 사람의 딸이다. 대통령은 말했다. 40여년 동안을 의지했던 탓으로 경계의 벽을 높이지 못한 잘못이 있었다고.

그러나 어찌 경계의 벽으로 이를 변명할 수 있을까! 이미 대통령은 마음속으로부터 경배해 마지않던 최태민의 딸이라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그에게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신뢰의 무지개 다리를 설정해 놓았던 것이다. 최태민에 대한 항간의 의혹을 말하기만 하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격앙하는 박 대통령에게서 우리는 대통령이 최태민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최태민의 딸 최순실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 또한 어떠했던가하는 것도 얼마든지 추론해 볼 수 있다.

최태민의 가족들이 최태민이 뿌려놓은 환상의 무지개 다리 위에서 대통령을 마음대로 농단했던 저간의 실체가 이제야 드러났다. 대통령에게서는 그 어떤 실체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인사 재정 연설 사업 그 모든 것이 매력도 지성도 보이지 않는 한낱 요사스러운 아낙네에 불과한 사람에 의해 배후조정된 것이다.

이로 인해 국격은 떨어지고 국민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촛불을 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광화문 광장에 모인 100만의 촛불은 분노에 떨었지만 여전히 민주적 시위로 평화롭게 끝났다. 여기서 우리는 본다. “대통령은 어리석었지만 국민은 현명하였다”라고. 대통령은 헌법을 유린하고 정치질서를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우리 정치의 미래는 밝다는 것을. 그 현장을 우리는 11월 12일의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보았다.

그런 조용하고도 평화로운 촛불집회를 보면서 시대의 모순과 분노를 잠재우며 동시에 새로운 아침을 열고 나가려는 정치권의 창조적 리더십이 발휘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어떤 사람은 지금 당장의 대통령 하야를 말하고 또 어떤 이는 탄핵을 말하고 또 어떤 이는 대통령의 2선 후퇴를 말한다. 모두가 다 일리가 있다. 그리고 그 심정도 이해할만하다. 국민들의 감정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문제되는 것은 현실성이다. 가장 현실성이 있는 방안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헤겔의 말처럼 현실성이 없는 방안은 실현성이 없다. 정국의 혼란도 막으면서 동시에 국민의 뜻에 따르는 방안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이제는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나 그 어떤 조치도 효과가 없다. 지금 당장의 대통령 하야가 사실은 최선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또한 같다. 정국의 혼란만 야기 시킬 뿐 국정 공백을 메꿀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없다. 60일내에 새 대통령을 선출해야만 하고 또 그 선거를 관리할 내각은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체제하에서의 선거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적 요구와 합치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 농단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상황에서 그와 함께 책임져야 할 내각이 후임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관리 내각이 될 수 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중심이 되어 현 시국을 타개해 나갈 방도를 찾아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정 의장이 각 당 영수들과의 협의를 통해 대통령의 탈당, 중립적인 내각의 구성, 앞으로의 정치일정을 짜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 일자를 먼저 정하고 그 선거일자 60일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사임하는 것으로 한다면 헌법이 거부하는 사태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각 당이 합의를 못 보거나 대통령이 거부한다면 그건 할 수 없다.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김중위 전 환경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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