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내 성지는 안성 양성면 미산리에 소재하고 있다. 미리내는 은하수란 뜻의 순 우리말이다.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천주교인들의 집에서 새어나온 불빛들이 깊은 밤중에 은하수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순조 1년(1801)에 일어난 신유박해 때부터다.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온건정책을 폈던 정조가 죽자 11살의 어린 순조가 즉위하였다. 그러자 대왕대비인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실시되었다. 노론 가문 출신인 그녀는 사도세자와 정조에게 동정적이었던 남인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다. 또한 조상 제사와 같은 유교적 의례·의식을 거부하는 천주교를 근절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로 말미암아 이승훈, 이가환, 정약용, 주문모 등 천주교를 믿거나 우호적인 100여명이 처형되고 400명이 유배되었다.

이후로도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었다. 그러자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들어왔다. 이들은 산골짜기마다 작은 마을을 이루며 척박한 땅을 일구고 그릇을 구워 팔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1827년 여섯 살 소년 김대건도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당진 솔뫼에서 박해를 피해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신부나 선교사들도 이곳으로 피신하여 머물렀다.

미리내 성지에 들어서면 고요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가 편안함을 준다. 성지의 엄숙한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산세가 참으로 좋다. 성지 내 주요 순례 장소로는 성 요셉 성당, 12위 무명 순교자 묘지, 103위 성인 기념 대성전, 김대건 신부 등 6명의 묘소가 있는 경당, 옛 미리내 마을터 등이 있다. 이곳을 거닐다보면 비록 신자는 아니지만 저절로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다. ‘힐링’(Healing) 장소로는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몸과 마음의 치유가 필요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장소다. 처음 방문자도 안내자가 곳곳에 있어 설명해주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다.

필자가 특별히 마음에 드는 곳은 성 요셉 성당이다. 풍수적으로 생기가 모인 혈지에 자리 잡고 있어 어느 곳보다도 편안해서다. 이곳의 산줄기는 한남정맥 문수봉(404.8m)에서 비롯되었다. 바사리고개를 지나 봉우리를 세운 다음 양쪽으로 갈라져 각각 시궁산(514m)과 쌍령산(502.4m)을 세웠다. 성 요셉 성당이 자리한 터는 쌍령산에서 내려온 산맥의 끝자락이다. 나뭇가지 끝에 열매가 열리듯 혈도 산맥 끝에 맺는 법이다. 용맥의 기세로만 본다면 왕릉 못지않다.

풍수지리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천주교 성당이 명당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아마도 당시 신도 가운데에 풍수지리에 능통한 사람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성당은 1906년 한국에서 최초로 서품을 받은 강도영(1896~1929) 신부가 지은 것이다. 강 신부는 교인들에게 봉헌금 대신 올 때마다 돌을 하나씩 들고 오라고 하여 직접 성당의 벽을 쌓았다. 여기에 필요한 흙은 근처에서 파온 그릇 굽는데 사용하는 백토를 이용하였다. 성당 출입문이 양쪽으로 있는 것은 초창기에 남성과 여성 신도를 따로 출입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성당 앞에는 쉴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다. 이곳 역시 기가 모여 있는 곳이다. 여행자들도 잠시 앉아 쉬다보면 저절로 기를 받게 된다. 여기서 보면 미리내 성지는 높은 산 속 깊은 골짜기에 형성된 분지 안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풍수에서는 이를 ‘보국’이라고 하는데 길지의 필수조건이다. 분지 내의 골짜기마다 흘러나온 물들은 모여 미산저수지를 형성하였다. 물은 산 따라 흐른다. 때문에 물이 모이는 것은 산이 모인다는 뜻이 된다. 풍수에서는 산은 사람, 물은 재물로 본다. 그러므로 이곳은 사람과 재물이 모이는 장소라 할 수 있다. 거기다 입구가 좁아서 외부에 쉽게 노출되지 않아 피난처로는 최고의 지형이라 할 수 있다.

천주교를 박해할 당시 지배세력들은 부패하고 무기력하였다. 이에 반발한 진보세력과 백성들은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게 되면서 천주교 교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벽파 세력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박해를 가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천주교를 더 넓은 지역으로 전파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박해를 피해 전국 산간 지방으로 숨어들어간 신자들이 그곳에서 계속 천주교를 전파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당시와 다르지 않다. 부패하고 무능한 소수의 기득권층들이 진실을 감추고 국민을 속이고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가려져 있던 진실은 더 폭로될 것이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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