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서로 에워싸고 '靑 포위행진'…오후 8시 '1분 소등' 행사도

▲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가 열린 26일 오후 시민들이 청와대 인근까지 행진해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전날 법원은 청와대 앞 200m 거리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까지의 행진을 허락했다. 시간은 오후 5시 30분까지로 제한했다. 연합
'비선 실세'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주말 촛불집회가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 등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10월29일 첫 주말집회 이후 이날로 한 달째 주말마다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에 첫눈에 비까지 내린 추운 날씨 탓에 참가자가 전보다 줄어들지 모른다는 예상이 나왔다. 그러나 집회가 시작되자 전국에서 주최 측 추산 190만명(연인원), 경찰 추산 32만명(순간 최다인원)에 이르는 인파가 전국을 메웠다.

박 대통령 측이 검찰 수사에 불응 입장을 밝힌 뒤 거센 반발과 함께 강제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 탄핵안 발의 움직임도 본격화한 상황이라 이날 집회는 여론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 '바람 불어도 꺼지지 않았다'…추위에도 서울 도심 촛불 물결

민주노총 등 진보진영 1천5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 행사를 개최했다.

주최 측은 이날 서울에 150만명, 전국적으로는 200만명이 모이는 등 사상 최대 규모 집회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기온이 떨어지고 눈·비가 내리면서 예상이 빗나갈 것으로 관측됐다.

본 행사에 앞서 청와대 방면 사전행진이 시작된 오후 4시께 주최 측은 20만명, 경찰은 오후 4시30분 기준으로 11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사전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광화문 광장 주변 지하철역 등으로 참가자가 급속도로 유입되기 시작, 본 행사 이후인 오후 9시40분 기준으로 주최 측 추산 150만명을 기록했다. 경찰 추산은 오후 7시40분 기준 27만명이다.

경찰은 특정 시점에 집결한 인원을 추산하는 반면, 주최 측은 도중에 행사장으로 들어오거나 떠난 사람까지 포함해 행사시간대 전체 인원을 반영하므로 장시간 진행되는 대규모 집회에서 양측 집계는 늘 차이가 있다.

본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늘어난 인파는 북쪽으로는 율곡로와 사직로, 남쪽으로는 프레스센터, 동서로는 새문안로와 종로까지 가득 들어찼다.

◇ 사상 첫 '청와대 포위행진'…200m 앞에서 "박근혜 퇴진"

본 행사에 앞서 오후 4시께부터 세종로사거리를 출발해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삼청로 세움아트스페이스 앞, 신교동로터리 등 청와대 인근을 지나는 3개 경로로 사전행진이 진행됐다.

이로써 청와대를 동·남·서쪽으로 포위하듯 에워싸는 '청와대 인간띠 잇기'가 처음으로 실현됐다. 서쪽 신교동로터리는 청와대에서 약 200m, 남쪽 창성동 별관은 약 460m, 동쪽 세움아트스페이스는 약 4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경찰은 애초 이들 경로에서 광화문 앞 율곡로 북쪽에 해당하는 구간은 행진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최 측이 이에 반발해 낸 집행정지 신청을 전날 법원이 일부 받아들여 청와대 인근까지 행진이 가능해졌다.

우의를 입거나 우산을 든 참가자들은 "박근혜를 구속하라", "이제는 항복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 방면 삼청로와 자하문로를 가득 메웠다. 시위대가 일제히 소리치면 청와대까지 전달되는 거리까지 접근했다.

법원은 야간에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청와대 인접 경로 행진은 오후 5시30분까지로만 제한했다. 대다수 참가자는 이후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갔으나 일부가 남아 경찰과 대치하며 청와대를 향해 시위를 계속했다.

경찰은 행진 시한을 넘긴 시위대에 여러 차례 해산명령을 했으나 인도로 밀어 올리는 데 주력하고, 충돌은 가능한 한 피하는 모습이었다. 신교동로터리 남쪽 통의로터리에서는 이동하던 시위대와 경찰이 한때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오후 9시까지 연행된 참가자는 없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참가자들은 본 행사를 마치고 오후 8시께부터 사전 신고된 8개 경로로 청와대 방면까지 2차 행진을 시작했다. 경찰은 청와대 인근에 여전히 일부 참가자가 남아 있는 점을 고려해 2차 행진에서도 사전행진 구간을 일부 열어줬다.

◇ 여전한 '축제 분위기'…가족단위 참가자 많아

오후 6시부터 2시간가량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본 행사는 박 대통령 비판 영상 상영, 각계 시민들의 시국발언, 공연 등으로 진지하면서도 흥겹게 진행됐다.

무대를 연 뮤지컬 배우들은 뮤지컬 '레미제라블' 대표곡인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Do You Here the People Sing)를 부르던 중 '너는 듣고 있는가' 부분에서 일제히 뒤로 돌아 손으로 청와대를 가리켜시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 26일 광화문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5차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
가수 안치환은 "전 세계에서 가장 폼 나는 비폭력 시위를 유지하는 이유는 더 처참히 끌려나기 전에 속히 퇴진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하야가 꽂보다 아름다워'로 바꿔 시민들과 함께 불렀다. 가수 양희은도 무대에 올라 과거 군사독재 시절 널리 불린 대표곡 '아침이슬'을 열창했다.

종전 집회에서처럼 가족과 함께 촛불을 들러 나온 시민들이 여전히 많았다.

중학생 홍모(13)군은 함께 참가한 부모 등 가족과 단상에 올라 "박근혜 대통령이 제게 큰 깨달음을 준 게 있다. 사람이라면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점"이라며 "대통령께서 생각이 있다면 내려오시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주최 측은 이날 오후 8시 참가자들이 1분간 일제히 촛불을 끄는 '1분 소등' 행사도 진행했다. 갑자기 어둠에 잠긴 광장에서 참가자들은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를 연호했다. 주변의 일부 상점도 함께 불을 끄며 동참했다.

본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지역에서 상경한 한 농민이 데려온 소가 광화문 광장 일대를 유유히 누비고 다녀 시민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2차 행진이 마무리되면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시민 자유발언대 등으로 27일 새벽까지 밤샘 일정이 이어진다.

◇ 전국 방방곡곡 촛불…대구·광주·부산 '대규모' 집회

서울 외 전국 곳곳에서도 궂은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은 촛불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는 물론 부산, 광주 등 주요 지역에서 만만찮은 규모의 집회가 이어졌다.

대구에서는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대구비상시국회의가 주최한 '박근혜 퇴진 4차 시국대회'가 열렸다. 약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시간이 갈수록 집회 참여 인원이 늘어 주최 측 추산 5만명(경찰 추산 7천명)이 모였다.

부산에서는 진구 서면 쥬디스태화 백화점 앞에서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시작됐다. 주최측은 참가 인원을 15만∼20만명으로, 경찰은 1만∼5만명으로 추산했다.

박근혜 퇴진 광주시민운동본부는 광주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참가 인원은 주최 측 추산 5만명, 경찰 추산 1만2천명이다. 집회에 앞서 학생과 시민들은 조선대에서 금남로까지 대형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다.

대한민국 최서남단 흑산도에서도 주민 100여명이 촛불을 밝히고 자유발언을 통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고 말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강원도 춘천 사무실 앞에서도 시민 2천여명(경찰 추산 1천명)이 촛불을 들었다.

◇ "촛불에 부화뇌동 말라" 보수단체 '하야 반대' 맞불집회

▲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가 열린 26일 오후 촛불을 든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
보수단체들도 지난 주말에 이어 촛불집회에 맞서는 집회를 개최했다.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행동'은 서울역 광장에서 1만명(경찰 추산 1천명)이 참가한 집회를 열어 박 대통령 하야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엄마부대 봉사단 대표 주옥순(63·여)씨는 "박근혜 대통령은 1원 한 장 받지 않았는데 범죄자 취급하는 검찰은 각성해야 한다"며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 국민과 나라와 결혼한 사람"이라고 외쳤다.

서경석 목사는 김무성, 김용태, 나경원, 하태경 등 비박계 새누리당 의원들의 이름을 대며 "지금 촛불에 부화뇌동하고 있는 이런 놈들을 뽑아준 우리의 손가락을 잘라야 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대구, 부산, 창원 등 지역에서도 박 대통령 팬클럽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각 지역본부가 맞불집회를 열었다. 연합

▲ 지난 12일 열린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3차 촛불집회' 모습. 연합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