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없다- (1)알코올, 뇌를 지배하다

술은 마약과 같은 중독 물질임에도 많은 이들이 의지만 있다면 쉽게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알코올 전문병원을 찾은 회사원 이 모(38)씨 역시 그랬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끊을 수 있지만 다만 술이 좋아서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술을 마시기만 하면 인사불성이 돼 난동을 부리고 숙취 때문에 회사에 지각하거나 출근하지 못한 날이 잦았다. 술에서 깨고 나면 기억에 없는 전날 밤의 일을 반성하고 금주를 결심했지만 항상 그 때뿐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음주를 지속해 오던 그는 결국 술에 취해 피투성이가 돼 길가에 쓰러져 있다가 발견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족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을 찾아오게 됐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술이 아니라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갖가지 구실을 핑계로 술을 계속 마신다는 데 있다. 이씨와 같은 상황이라면 단순한 습관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닌 질병으로 봐야 한다.

알코올 의존은 습관적인 음주로 인해 술을 조절하는 뇌의 기능이 망가지는 뇌 질환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알코올 사용장애 평생 유병률은 정신질환 중 가장 높은 반면, 정신의료 서비스 이용률은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가장 흔한 질환임에도 실제 치료를 받는 사람이 적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상은 자신의 술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음주로 인해 건강이나 사회생활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거나 가족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면 지금 알코올 중독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에게 음주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알코올 중독이 진행되면 뇌의 판단력이 떨어져 이마저도 부인하게 된다. 만일 주변의 만류에도 술을 끊지 못한다면 이미 스스로 술을 조절할 수 없는 중독 상태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이 때에는 단순히 술을 끊는 것뿐 아니라 술에 의존하고 있는 원인을 찾아내 술 없이도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 과정이 바로 알코올 중독 치료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술이나 마약, 도박에 중독돼 자유분방하게 살던 그녀는 말년에 빈털터리가 돼 심장과 폐 질환으로 투병하다가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그런 그녀가 하나뿐인 아들에게 남긴 건 막대한 빚과 정신적 스트레스뿐이었다.

음주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본인과 가정을 넘어 사회, 국가적으로도 각종 폐해를 유발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술이 주는 즐거움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용기가 없다면, 그리고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하고 있다면, 가족이 소중하다면, 그 누구도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없다.

김석산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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