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무와 주작 사이… 학이 승천하는 형상

관아는 임금을 대신해 군사와 행정을 지휘·통제하는 공간이다. 그 입지를 선정하는데는 지역의 중심성과 풍수적 조건을 중요시했다. 그러므로 관아는 도시풍수와 양택풍수를 공부하기에 좋은 장소다. 인천 도호부청사는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됐으며 인천광역시 남구 관교동 146-1에 소재한다. 동헌과 객사가 있고 옆에는 향교가 있어 풍수답사 코스로는 안성맞춤이다. 관아를 답사하기에 앞서 조선시대 지방 행정조직을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을 8도로 나눴다. 도에는 감영이 설치되고 종2품의 관찰사가 파견돼 통치의 책임을 맡았다. 관찰사는 감사 또는 도백·방백으로도 불렀다. 감영이 소재한 도시를 부(府)라 했고 관찰사가 부윤(府尹)을 겸직했다. 부 아래에는 목(牧)을 뒀고 정3품인 목사(牧使)가 다스렸다. 목 아래는 도호부(都護府)로 종3품인 부사(府使)가 다스렸다. 도호부 아래에는 종4품인 군수가 다스리는 군(郡)이 있고 군 아래는 종5품 현령과 종6품 현감이 다스리는 현(縣)을 뒀다.

조선시대 관아는 감영과 병영, 수영을 포함해 약 460개가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 철거해 학교나 읍·면사무소로 사용했다. 인천 도호부청사도 헐리고 그 자리에 문학초등학교가 들어섰다. 현재의 건물은 복원한 것이다. 관아의 건물로는 입구에 2층으로 된 아문(衙門)이 있다. 1층은 삼문이 있고 2층은 누각이다. 동헌은 관아의 가장 중심적인 건물로 수령이 정무를 수행하는 공적 공간이다. 내아는 수령과 그 가족들이 생활하는 사적 공간이다.

객사는 공무를 위해 파견된 중앙관리나 사신들이 머무는 숙소다. 가운데를 높게 해 임금과 궁궐을 상징하는 전패와 궐패라는 의자를 안치했다. 수령은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이곳에서 임금을 향해 절을 올렸다. 양옆은 익사(翼舍)인데 한 곳은 숙소고 다른 한쪽은 연회 장소로 이용됐다. 객사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가 있기 때문에 동헌보다 격이 높았다. 그러므로 동헌 뒤에 배치하거나 풍수적으로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했다. 그 밖에 관아에는 향리(아전)들이 근무하는 작청, 수령을 자문하는 향청, 병장기를 보관하는 군기청, 세금을 거둬 보관하는 창고, 죄수를 가두는 옥사 등이 있다.

인천의 태조산은 한남정맥 상에 있는 성주산(217m)으로 시흥시와 경계를 이룬다. 이 산부터 인천광역시가 시작된다. 옛 지리지에는 인천의 진산을 소래산(299m)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는 성주산도 소래산의 일부로 본 것이다. 성주산에서 나간 한남정맥은 거마산과 광학산를 거쳐 만월산(187m)을 세웠다. 만월산은 높지 않지만 기가 센 산이다. 여기서 서쪽으로 인천지맥을 뻗어 인천의 중심지를 이뤘다. 만월산은 흙과 바위색깔이 붉고 기러기가 날아가는 형상이라 해 주안산(朱雁山)이라고도 불렀다. 주안이라는 지명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만월산에서 뻗은 맥이 수봉산(112m)을 세웠다. 수봉(水峰)은 물 가운데 솟은 산이란 뜻이다. 주안 앞바다가 매립되기 전까지는 밀물 때면 바다 가운데에 수봉산의 봉우리만 보였다고 한다. 수봉산에서는 두 줄기로 산맥이 갈라진다. 하나는 서쪽 제물포 방면으로 뻗어 자유공원이 있는 산을 만들었다. 또 하나는 남쪽의 인하대학교 뒤편으로 뻗어 승학산(123m)과 문학산(213m), 청량산(173m)을 세웠다.

인천 도호부청사는 승학산을 현무로 삼아 등지고 문학산을 주작으로 삼아 앞에 두고 있다. 이곳은 학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오르는 형상이다. 학의 날개에 해당되는 지명은 학익동이다. 이들 산이 사방으로 감싸주며 분지를 형성했다. 그 가운데에 인천 도호부와 관교동이 입지하고 있다. 관교동은 관아와 향교가 소재한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문학산 정상에는 석성과 토성을 2중으로 쌓은 문학산성이 있다. 백제의 비류가 처음 도읍한 곳이라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 옛 도시들은 평성과 산성을 함께 뒀다. 평시에는 평지성에 생활하다가 전시나 유사시에는 산성으로 들어갔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산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그만큼 산에 익숙하고 능수능란하게 활동한다. 이러한 장점을 최대한 살려 산악에서 전투를 했던 것이다.

이제 낙엽이 떨어져 간산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짬을 내서 문학산에 올라 인천의 산세와 도호부의 입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인천이 달리 보일 것이다. 300만 인구의 거대도시로 발전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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