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대학 3년생 정군이 지금의 사태에 물었다. 그리고 그는 이 나라가 정말 지겹고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이민을 생각중이라고 말했다. 언젠가 ‘헬조선’ 이라는 주제를 놓고 내게 할 말이 없게 만든 학생 중의 한명으로 최근에는 놀러가듯 매주말이면 광화문으로 향하는 또래 청년중의 하나다. 얘기 중에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얘기의 시작은 간결하게 시작됐어야 했지.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최순실 가족과 살을 부딪고 살아가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했던 1998년 최순실을 비롯한 그의 사람들은 박 대통령의 존재감을 깨닫고(어떤 이유에서든지) 지나친 욕심을 부린 나머지 지금에 이른 어찌보면 간단할 얘기 아닌가. 물론 대통령이 이 과정에 처음부터 단단히 끼어 청와대 비아그라 구입부터 장시호와 닮은 꼴등 갖은 얘기들을 생산하고 있는 상황은 부인하지 못하게 됐다.

정군이 알다시피 지금 국민들은 분노와 허탈함에 빠져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국정 농단 사태로 우울감·무기력감을 느끼는 증상을 일컫는 이른바 ‘순실증’을 호소하는 글마저 도배되고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모든 국민이 집단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데 정군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겠다. 그래서 청소년과 젊은 층의 충격이 크다는 신문의 뉴스는 이제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보일 정도다. 무뎌진 탓일까. 아니면 어차피 꾸지 못했을 꿈같은 남의 얘기로 머리만 아파와 포기한 것인지 정군 역시 종잡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자네 역시 끼고 사는 스마트폰을 통해 대통령의 탈법 행위를 처음부터 지켜봤을 것이다. 단지 중·장년층과 달리 대통령이 범죄에 연루돼 퇴진을 요구받는 지금의 상황을 처음 겪는 것 뿐이다.

이런 상황은 어쩌면 다른 또래의 청년들이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느꼈을 무기력감과 다르지 않다. 물론 어떤 세대든지 이런 엄청난 사태를 겪지 않고 자연히 죽음에 이르기는 어렵다. 정군 아버지 세대가 베이비부머로 지금의 박 대통령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장 신뢰했던 부하의 총에 쓰러졌고 그 할아버지는 일본의 지배 아래 역시 나라의 운명과 가까운 여러 사건들을 목도하며 살아가다 힘없이 운명했을 일이다. 그러니까 정군이 소위 인터넷에서 말하는 ‘하야 세대’라고 해도 어쩌면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야 한다는 명제다. 정군이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이 나라에선 노력해 봐야 소용없을 것 같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정군이 배워온 상식의 배신이 불신시대를 만들고 있다 해도 평등·공정 등의 가치가 철저히 무시됐다고 해도 지금 우리는 이 나라를 추슬러야 하는 의무마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생각할 수 있겠다. 지금처럼 중차대한 시기에 언제까지 대통령의 입에만 매달려 있어야 하는지. 그러나 이제 박 대통령은 지나간 대통령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제 국민적 분노 해소를 위해 귀중한 시간들을 촛불로 지새우기에는 우리에게 시간이 너무 없다. 세계정세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가늠하기 어려운 정부가 들어섰고 다른 나라들이 이에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베도 당선인을 만났고 다른 나라들도 트럼프의 향배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상황에 하야와 탄핵을 교대해가며 시간만 죽이고 있다. 또한 기대했던 야권은 복권이나 맞은 듯 상황을 즐기고 있다. 어찌할 것인가.

정군이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온통 산만 보인다. 그 만큼 좁고 자원도 부족하다. 솔직히 해외여행을 해 본 사람의 뇌까림처럼 그렇게 내세울 만한 역사 유물도 솔직히 드문게 사실이다. 망국으로 향했던 조선왕조의 실패에 이어 결국은 일제 식민지의 아픈 경험에 이어 한국전쟁으로 갈려진 땅덩어리에 이르기까지 그저 숨 가쁘게 달려온 생각만 가득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 최빈국에서 요트를 꿈꾸는 선진국 수준으로 으로 변모해 왔다. 그러나 그 짧았던 번영의 시대는 아쉽게도 막을 내려가는 듯한 조짐이 여러 곳에서 보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정군에게 감히 지금의 모든 위기가 국방이나 경제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정치인의 잘못이 크다. 그리고 정군의 지적대로 이 지경을 만들어 놓은 보수 세력이 깊이 성찰해야 한다. 아마도 지금의 보수는 방관의 죄가 크다. 박 대통령이 인정한 대로 긴 시간 최태민 일가의 도움을 받아온 점에서다. 누구라도 알았으면 몸 바쳐 고치는 노력의 흔적이라도 보여야 했다. 며칠 전에는 궂은 날씨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평화롭고 질서 있게 시위를 이어갔다. 이런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는 사람들의 가슴도 같은 생각이다. 민주주의는 때로 늘 신경을 써야하는 식물처럼 가꾸기는 무척 힘들다. 잠깐 눈을 돌려도 시드는 속성이 있다. 지켜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같이 지켜내자. 그리고 함께 아무말 없이 손을 잡는 그 순간을 기대해 보자.

문기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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