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97세의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인생론 ‘백년을 살아보니’를 펴냈다. 50대 이상은 김 교수의 책 ‘운명도 허무도 아니라는 이야기’ 또는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한번쯤 읽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삼중당에서 1963년 초판을 발간한 ‘운명도 허무도 아니라는 이야기’는 내용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제목은 선명하다. 뜬금없이 작명론을 꺼내는 이유는 최근 우리가 처한 현실이 이 책 제목과 묘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어머니를 따라 무당을 만난 적이 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똑 같은 목소리로 빙의가 되어 막내 동생이 며칠 전 불장난하다 화상을 입은 일을 가지고 어머니를 질책하는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 다친 위치와 크기까지 정확히 맞추니 아연실색할 수 밖에. 나를 보고 앞으로 어떻게 인생이 전개될 것이라고 예고를 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거의 적중한 것 같다. 운명이나 팔자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호레이쇼,이 세상에는 너의 철학으로는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은 것들이 있다네.” 아버지의 유령을 만난 햄릿이 친구인 철학자 호레이쇼가 세상에 유령 따위는 결코 없다고 하자 호레이쇼에게 한 대사이다. 인간사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난다.

공자는 괴이한 것, 힘쓰는 것, 어지러운 것, 신비하고 귀신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평상의 정도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는 말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 부녀를 그렇게 오랫동안 믿고 의지한 것은 그들이 말한 것이 적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과 재벌부터 고위공직자와 서민까지 점 한 번 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듯 힘들 때는 더욱 그런 곳에 의지하기 마련이다.

내 가까운 사람은 전국으로 사주·신점·기문둔갑·자미두수·타로·점성술 고수를 찾아 순례를 한다. 국내도 모자라 일본·대만·홍콩까지 원정을 간다. 부모님 묘소도 여러 번 옮겼다. 아침마다 이상한 주문도 외우고 속옷의 부적도 계절마다 바꾸었다. 70이 훌쩍 넘은 그 분이 내린 결론은 “허무하다”였다.

운명과 허무는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다.오래 전 모시던 상사는 정수리 백회혈을 통해 우주의 기운을 흡수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면서 식사도 필요없다고 굶다가 결국 병원 응급실로 직행했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피격을 당한 뒤 낸시 여사는 대통령의 세세한 일정까지도 점성술사 조앤퀴글리에게 묻고 결정했다. 심지어는 오늘은 위험한 날이니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하니 동서양이 따로 없다.

박 대통령도 외로운 마음에 최순실을 말동무로 삼고 의상이나 신경 써주는 역할에 그치게 했다면 이렇게 비참한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병으로 누워있을 때 내시들이 무당의 말을 듣고 치성을 드리자 성균관 유생들이 들고 일어나 무당을 내쫓았다. 내시가 왕에게 고하자 세종은 “내가 늘 선비를 기르지 못함을 걱정했는데 이제 그들의 사기(士氣)가 이와 같으니 무얼 근심하랴. 내 병이 다 나은 듯 개운하다”고 선비들의 손을 들어줬다.

공자가 심한 병을 앓을 때 제자 자로는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리자고 한다. 공자는 “그런 기도라면 나는 하늘에 빈 지 오래되었다”며 사사로운 욕심을 위한 기도를 경계했다. 시라카와 시즈카가 쓴 ‘공자전(孔子傳)’에 보면 공자는 무녀(巫女)의 자식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대목이 나온다. 그런 공자가 그동안 빌었던 것은 하늘이 정한 도리에 따르기 위한 노력이요 주술이나 목숨과는 관계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박대통령은 사이비 종교나 굿판은 절대 아니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국민들도 그렇게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의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다고 목이 메어 사죄하는 대통령의 말이 진심으로 와 닿지 않는 것은 왜 일까? 그리고 야권의 전략미스로 박 대통령이 오기를 부리게 만든 것도 운명일까? 21세기판 ‘운명도 허무도 아니라는 이야기’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인재 전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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