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로 지붕이 덮여있는 집, 상대방의 코를 잡아당기는 사람들, 돌담에 머리를 박는 사람, 누군가에게 파란 망토를 씌워주는 여자,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남자, 양털이나 돼지 털을 깎는 사람, 바람 속에 깃털을 날리는 사람 등 갖가지 모습과 풍경이 화면 가득 채워져 있다. 한 마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일들로 뒤죽박죽 섞여 있는 풍경이 호기심을 끌만큼 흥미롭다.

이 그림은 16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최고 화가로 ‘농민 화가’란 별칭으로 불린 대(大)브뤼헐(BRUEGEL, Pieter the Elder, 1525~1569)의 대표작 '네덜란드 속담'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그림에는 무려 100개가 넘는 속담과 관용적 표현이 뒤섞여있다. 세계미술사에 이토록 많은 속담을 한 그림에 담은 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의 속담들이 그림으로 그려진 것일까?

많은 이미지 중 붉은 선 안에 표시된 것만 살펴보면 ①달걀 쥐느라 거위 알 놓치다(탐욕으로 나쁜 선택을 한다) ②화덕보다 더 크게 입을 벌리다(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에 집착하다) ③이 빵에서 저 빵까지 손이 닿지 않는다(끼니를 잇기 힘들다) ④도끼를 찾는다(구실 거리를 찾는다) ⑤한번 엎지른 죽은 다시 퍼 담을 수 없다(한번 실수한 것은 돌이킬 수 없다) ⑥서로 잡아당기기(주도권쟁탈,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는다) 등의 의미가 담긴 속담이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 대(大)피터르 브뤼헐<네덜란드 속담>1559, Oil on oak panel, 117x163cm


소재는 다르지만, 우리나라 속담 내용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특히 어리석고 부도덕한 인간의 행위를 꼬집는 것에는 시공간을 초월해 변함이 없다. 속담은 사전 뜻대로 ‘교훈이나 풍자를 하기 위해 어떤 사실을 비유의 방법으로 서술하는 간결한 관용어구’이다. 특정한 작자 없이 일상생활에서 비롯되는 현상을 빗대어 만들어진 관용어로 나름의 시대성이 담겨있다. 이 점에서 속담은 오랫동안 민중의 삶 속에 회자되어온 처세의 교훈이자 삶의 깨달음이다. 때때로 그 어떤 철학자의 말이나 문학적 글보다 더 깊은 공감을 끌어낼 만큼, 속담에는 인간사 시행착오에서 얻은 삶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변종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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