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이후 이승만 대통령에서 8개월 만에 신군부 쿠데타로 물러난 최규하 대통령을 포함 박근혜 대통령까지 열한 명의 대통령이 있다. 그 중 이승만, 윤보선, 최규하 세 명은 임기 내 하야를 하고, 한 명은 재직 중 목숨을 잃고, 여섯 명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심한지탄을 받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4·19혁명으로 미국 하와이로 쫓겨가며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에 머물다 유명을 달리하여 1965년 7월 9일 돌아왔으며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임기 중 부인이 흉탄으로 또 본인도 부하가 쏜 총탄에 세상을 떴으며, 전두환 대통령은 퇴임 후 1988년 1년 1여개월 백담사에 감금격리와 수형생활을 그리고 24억 원의 재산 추징을 당했으며 노태우 대통령도 퇴임 후 재산추징과 수형생활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 중인 1997년 차남 현철이 부정부패에 연루돼 징역을 살았다. 대통령은 이렇게 회고했다. 아들이 구속되자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불가능했다. 집무를 하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으며 재임기간 중 가장 괴롭고 고독한 시간이었다. 그는 온갖 번민과 희한으로 밤에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청와대 생활이 마치 감옥과 같아 하루 빨리 임기를 마치고 싶었다고 하며 대체 대통령을 왜 하려고 했었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도 재임 중 두 아들이 구속되는 것을 보며 내외가 말을 잃고 각자 서재에서 시간을 보냈다며, 이희호 여사는 남편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에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2002년은 악몽이었다며 하루 속히 청와대에서 나가고 싶었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중 탄핵소추를 받은 첫 번째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는 재임 중 “대통령 못 해먹겠다”고 하며 대통령이 된 것을 후회했다. 그는 퇴임 후 낙향하여 살다 부인이 부정부패에 연루돼 검찰소환을 받게 되자 2009년 5월 23일 새벽 자신의 집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그는 자살하기 전 입버릇처럼 정치하지 마라,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해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려고 했던 것이 오류였던 것 같다는 말을 했었다.

이명박 대통령 또한 형님 이상득이 구속되는 것을 보니 억장이 무너진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제 불찰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들의 지난날들을 살펴 볼 때 불행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임기를 1년여 조금 더 남겨놓은 박근혜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과 다르지 않은 처지에 놓여 있다.

박 대통령은 안종범 수석비서 및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 청와대 문고리 3인방과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에 휘둘려 국정농단을 당했다. 국민다수는 대통령이 하야 또는 퇴진해야 한다고 연일 압박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밤잠을 못 이룬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고 했다. 지금 퇴진하는 방법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난달 28일 3차 대통령담화를 발표, 질서 있는 퇴임을 위해 그 시기와 방법에 대해 국회에 위임했다.

역대 대통령이 겪은 일련의 불행을 익히 알면서도, 요즘 소위 잠룡이라는 정치인들 중 다수는 국가적 위기극복보다는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그 계산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때엔 현명한 정치인이라면 국가가 처한 경제, 안보, 외교적 위기를 걱정 사리사욕, 당리당략 따윈 뒤로 미루어야 한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국민의 의중을 잘 읽어야 한다. 전직 대통령들처럼 대통령을 하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으면 대통령 병에 걸려 잔머리 쓰며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뜻을 접는 게 차라리 낫다. 자칫 그들 꼴 난다.

한정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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