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성남시장 돌풍이 심상찮다. 촛불 바람을 타고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대선주자 반열에 혜성처럼 등장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 이어 야권 대선주자 ‘빅2’에 올랐다. 광역단체장과 달리 기초단체장이 대선주자로 거론되며 10% 이상의 지지를 받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sns에서는 아이돌 스타에 버금가는 유명 인사다. 손가락 혁명군으로 불리는 ‘빠’들이 전국에 실핏줄처럼 퍼져 있다. ‘이재명 신드롬’이 궁금해 그가 전국 각지를 다니며 했던 강연회 동영상을 찾아보고, 광화문 촛불현장에서 시민들을 인터뷰하고, 지역정가의 평을 들어봤다.

잠룡 반열에 올라있는 인사들과 다른 세 가지의 결을 찾을 수 있다. 울림, 선명성, 비주류다. 우선, ‘흑수저’ 성공신화가 있다. 경북 안동에서 화전을 일구던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 후 성남시로 이사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중학교 진학도 못하고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야구 글러브 공장 프레스에 왼쪽 팔목 뼈 하나가 잘려나가 장애인이 됐다. 이재명은 몸이 불편한 채 기름때 낀 작업복을 입고 공장으로 향하는 자신이 싫어 두 번의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열일곱 살 사춘기 때 장애인이라는 사실과 희망이 없는 현실에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연탄불이 꺼져 실패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자살을 시도했다가 자형이 구해 살아났다.이후 나는 죽을힘으로 살기로 작정하고 공부를 시작했다”(주간경향 1162호) 이재명은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친 뒤 대학에 들어가 사법고시에 합격해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다 성남시장이 됐다. 죽음의 문턱 앞에 선 처절함과 가난을 이겨낸 흙수저 성공 스토리가 주는 울림은 남다르다.

이재명에게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박근혜 탄핵정국에 야권 잠룡들이 이미지 관리로 주저할 때 거칠고 직설적이고 격식 없는 화법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통터지는 국민들을 대리만족시키고 있다. 꽉 막힌 속을 뻥 뚫어줘 ‘이재명 사이다’라는 말도 생겼다. 촛불 민심은 이재명 신드롬에 빠져 그를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이재명은 민심의 등에 올라탔다. 촛불현장에서 만난 은행원 김성훈씨는 “이재명을 다시 봤다. 이재명 말을 들으면 시원하다. 대통령 선거에 나오려는 야당 인사 중 가장 선명하다. 지금껏 노사모 후원금 내다가 끊었다. 이제 이재명을 지지하겠다”고 했다. 김씨는 2, 3, 6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후 이재명 ‘빠’가 됐다. 경기도가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선명성에서 앞서고 토론에 능하다. 호남에서도 지지를 받고 있다. 제2의 노무현이 될 수도 있다”고 평했다.

이재명은 자신을 주류 정치인 축에도 못 끼는 ‘변방의 장수’라고 스스로 말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공(功)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운동권 기득권도 없다. 국회의원 한 번 못한 철저한 비주류다. 그렇지만 야권 잠룡들과 달리 시민과 직접 몸으로 부대끼는 ‘변방정치’를 하고 있고, 해 본 큰 장점을 갖고 있다. 중앙정부, 경기도와 갈등을 빚기는 했지만 청년배당, 무상교복, 무상산후조리원 정책은 변방정치와 아웃사이더를 하면서 얻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향점이 명확하다는 것도 이재명을 주목하는 이유다. 다른 잠룡들이 중도의 지지를 기대하며 또는 지키려고 처신하는 것과 달리 중도 코스프레는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정체성을 잃고 포지션을 중도(애매모호)로 이동하면 지지층에는 배신감을, 중도층에는 의심을, 보수층에는 비웃음을 사게 된다”(11월18일 페이스북)라며 중도 코스프레 커밍아웃을 했다. 대신 노동자, 서민, 중산층 등 국민 다수에 유리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유능한 진보’를 표방하고 있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도 “성공한 한국의 버니 샌더스가 되고 싶다. 트럼프나 샌더스 모두 나처럼 변방 출신으로 국가권력을 차지했지만 샌더스는 사회적 약자와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추구해 온 사람이다.나는 ‘성공한 샌더스’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이재명이 촛불 민심의 등에 올라탔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다. 샌더스를 닮고 싶어하지만 설화(舌禍)도 많아 트럼프에 가깝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 선명성 경쟁 중에 드러난 과격한 진보 이미지를 유능한 진보로 바꿀 수 있느냐와 잠룡으로서의 무게감과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이재명 돌풍에 밑불이 되는 촛불 민심의 힘이 전이되거나 떨어지면 끌고 갈 수 있는 동력이 있느냐도 변수다. 김광범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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