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234명이 찬성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또 다시 ‘대통령 없는 나라’가 됐다. 헌정 사상 두 번째 있는 일이지만,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국무총리가 대통령 직무를 대행한다고 하지만 외교·안보에는 이상이 없는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는 대외신인도 하락과 함께 그냥 주저앉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이미 두 달여동안 식물대통령 체제 속에 빠진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단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헌재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여부 심판에 본격 착수한다. 헌법재판관들이 각자 관련자료 검토작업에 들어가고, 전례에 비춰보면 별도의 전담 연구반 편성도 할 것으로 보인다. 헌재의 탄핵심판에는 최장 6개월이 걸린다. 물론 헌재의 심판이 빨라질 수도 있지만 법정 시한이 모두 소요되고 탄핵으로 결론이 나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시나리오까지 감안하면 길게는 8개월까지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 헌재는 발 빠르게 움직여 최대한 시간을 줄여야 한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총리가 권한을 대행하는 비상 상황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과도기간이 최대한 단축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이 어지러운 혼란과 갈등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는 가급적 빠른 심판이 바람직하다. 또 1월과 3월 임기를 마칠 예정인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 등을 고려할 때 정국 안정을 위한 헌법재판소의 빠른 선고가 요구된다.



#헌법재판소의 발 빠른 움직임과 함께 요구되는 것은 정치권의 정상화다. 대통령을 포함한 최순실 사태의 연루자에 대한 정치적, 사법적 단죄는 엄정하게 이뤄져야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국정은 한시라도 빨리 정상화해야 한다. 4·13 총선으로 출범한 20대 국회는 그동안 나랏일을 살피지 않았다. 탄핵안이 처리될 경우 정치권은 급속히 대선 모드로 선회할 것으로 보여 나랏일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탄핵안이 처리되면 정치권은 급속히 대선 모드로 선회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각종 국가 현안이 또 뒷순위로 밀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최순실 사태가 불거진 지 두 달이 다 돼간다. 그동안 국가 리더십의 부재로 국정 전반이 총체적 위기를 맞았다. 정치권도 탄핵을 차기 대선과 연계시켜 정치적인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정략에서 벗어나 국민의 불안을 씻어주는데 주력해야 한다. 경제와 외교·안보는 통치의 기반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나라의 토대가 튼실하지 못하고 민생이 무너지면 실패한 정권이 될 수밖에 없다. 여야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대선을 향한 정치적 셈법에 앞서 국정만큼은 초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자제와 절제가 필요한 시기다. 정치권은 촛불민심이 단순히 정권교체에 있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때다.



#국민들도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온 나라가 뜨거웠던 주말을 보내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고 있다. 서울 도심을 수놓은 촛불집회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이어진 대규모 시위는 탄핵정국을 바라보는 여론의 분노를 가감 없이 보여줬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집회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성숙성이다. 자발적 성격이 짙었던 광화문 집회에서 혼란 없이 시위가 마무리 될 수 있었던 점은 인상적이다. 여론과 시민의식이 정치권의 의식수준을 훨씬 앞서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라는 사태를 놓고 들끓는 여론이 하루 이틀 내에 가라앉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최순실 사태의 충격 속에서만 살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다시 한 번 기대하는 것은 촛불시위에서 보여줬던 시민들의 정확하고도 날카로운 판단력이다. 우리는 헌재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상황 악화 방지와 건전한 시민의식의 형성과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부요인의 유입을 막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의 권한정지라는 참담한 사태에 직면한 현 시점에서는 정치. 사회의 모든 세력이 먼저 절제와 자제로 책임의식과 자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다.

탄핵이 진행되는 이 기간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우기 위한 절체절명의 시간이다. 탄핵심판은 헌재에 맡겨 놓아야 한다. 이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또 시민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할 때다.

엄득호 정치부장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