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언론의 역할과 관련해서는 상반된 두 시각이 있다. 하나는 언론이 사회현상을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여론은 형성하고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언론들이 두 역할 사이에서 조심스러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언론은 전자보다 후자의 인식이 더 강하게 박혀있는 것 같다. 개화기 독립신문을 주도했던 서재필, 이승만 등은 당시 정치개혁을 선도했던 선각자들이었다. 또 1905년 을사늑약 직후 '황성신문'에 실렸던 장지연선생의 ‘是日也放聲大哭’이나 동아일보 ‘일장기 말살사건’도 자주 인용되는 사례들이다. 뿐만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세력의 한 축에 언론과 언론인들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언론은 단순히 뉴스를 전달해 기능적 도구가 아니라 국민을 이끌어가는 일종의 ‘志士形 언론’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언론은 사회계몽기구로 인식되어왔고 또 적지 않은 언론인들이 정치권으로 발탁 혹은 진출해왔다. 실제로 언론은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창구로 인식되어 온 측면이 있고 여·야를 막론하고 새로운 인물을 발탁할 때항상 언론인들이 최우선 대상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같은 지사형 언론 인식은 적지 않은 폐해도 낳았다. 하나는 이른바 ‘권언유착’ 혹은 ‘경언유착’ 이라는 심각한 고질병을 한국사회에 착근시킨 것이다. 막강한 언론 권력이 정치권력 혹은 경제권력들과 결탁해 부정한 정치·경제 권력들을 비호·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해온 것이다. 때문에 모든 독재 권력과 많은 대기업들이 언론인들을 직접 고용하거나 직·간접적 지원을 통해 언론과 결탁하는 일이 일상화되어 버린 것이다.

또 다른 폐해는 언론 스스로 권력화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국민들의 여론을 조성 아니 조작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체질화된 것이다. 물론 최근 들어 뉴스를 다루는 매체들이 늘어나고 인터넷 기반의 언론매체들이 급증하면서 특정 언론의 여론독점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오랜 기간 대한민국의 여론을 주도해왔다고 자부해온 일부 언론사들의 이런 시각이 크게 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로 여기에 우리 언론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계몽주의적 언론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언론사들 역시 살아남기 위해 똑같은 선정성 경쟁에 몰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정적인 뉴스제목으로 독자들의 시선 끌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인터넷 매체들, 하루 종일 정제되지 않은 정치평론가들의 발언으로 도배된 일부 종합편성채널 시사프로그램들과 경쟁하기 위해 기존 언론들 역시 똑같은 선정적 보도행태로 수렴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선정적 보도 경쟁은 필연적으로 폭로저널리즘으로 이어지게 된다. 현직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진 ‘최순실 게이트’ 역시 jtbc의 태블릿PC 내용이 폭로되면서 시작되었다. 물론 몰상식한 대통령과 현 정권의 일탈들을 만천하에 드러낸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특히 폭로성 보도를 하면서도 사실성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언론사 스스로 노력한 점은 더욱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이어지고 있는 다른 매체들의 보도들을 보면 선정주의 경쟁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성형외과 의사, 운전기사 그리고 요리사까지 여러 주변 인물들의 폭로기사들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물론 청와대와 이번 사건 핵심인물들이 철저히 함구하고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것 같은 상태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다보니 이번 사건이 대통령과 측근들의 국정 농간 및 부패 같은 본질적 문제를 벗어나 자칫 대통령의 비정상적인 엽기적 사생활에만 관심이 모아질 위험성도 있다. 더구나 이번 사태는 무당, 사이비종교에서 시작되어 태반·마늘·백옥주사 그리고 비아그라 까지 3류 황색언론의 좋은 소재들이 모두 다 등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역설적으로 권력과 대기업의 유착, 국정파탄 같은 핵심 문제들이 덮어질 수도 있다. 더구나 기득권 세력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상태에서 선정적 보도경쟁은 진실을 더욱 미궁에 빠지게 만들지도 모른다.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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