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과 한음’ 일화로 유명한 백사 이항복의 조상 묘를 찾았다. 진위향교와 가까운 평택시 진위면 동천리 산167에 있다. 무봉산(208.8m) 정상 바로 아래에 있어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기세가 느껴지는 곳이다. 역사적인 큰 인물의 탄생은 지리와 무관하지 않다. 생가든 조상 묘든 둘 중 하나는 좋다. 풍수 길지는 유명한 인물의 묘 보다는 조상 묘가 더 좋은 경우가 많다. 큰 인물은 조상 묘를 좋은 곳에 쓰고 난 후 태어난다는 의미다. 이항복의 묘와 부친인 이몽량, 조부인 이예신의 묘는 포천군 가산면 금현리에 있다. 물론 모두 길지다. 그러나 이들은 무봉산의 정기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예신의 고향이 평택 진위면이기 때문이다.

묘역에 들어서면 고려시대 상서를 역임한 이과(李薖)의 경모비가 서있다. 이과는 경주이씨 기세조인 이거명의 17세손으로 상서공파의 파조다. 경주이씨 종회 가운데 가장 현달한 가문으로 꼽는다. 그 후손 중에 이몽량과 이항복을 포함해 영의정 4명, 좌의정 2명, 판서 8명, 대제학 2명 등 수많은 인물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이과와 그의 아들 이원보의 묘는 실전(失傳)돼 묘역 가장 위에 단비만 있다. 그 아래로 이원보의 아들이자 백사의 6대조인 이승(전농판관), 이승의 배위인 전주최씨, 5대조인 이연손(공조참판) 묘가 상하 일렬로 있다. 모두 진혈에 해당된다. 이처럼 혈이 상하 일렬로 나란히 있는 것을 연주혈(聯珠穴)이라고 한다. 구슬을 연달아 꿰어놓은 것처럼 생겼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연손은 4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이숭수는 첨지중추, 이철견은 좌리공신으로 우찬성, 이정견과 이석견은 북방을 정벌한 공을 세웠다. 숭수의 맏아들 이성무는 안동부 판관을 지냈고 그의 셋째 아들 이예신은 학덕이 높고 풍수지리에도 능했다. 그는 포천으로 이주해 자신의 묘를 화산 추곡에 정했다. 예신의 둘째 아들이 이몽양으로 형조판서와 우찬성을 역임했다. 몽양의 여섯 아들 중 넷째가 백사 이항복이다. 선조 때 영의정에 올라 오성부원군에 봉해졌다. 이항복의 5대손 이광좌는 경종 때 영의정, 이태좌는 영조 때 좌의정, 이태좌의 아들 이종성은 영조 때 영의정, 이경일은 순조 때 영의정, 이태좌의 5대손 이유원은 고종 때 영의정을 역임했다. 이처럼 영의정 5명을 배출해 속칭 오신(五臣)집으로 불리기도 한다.

무봉산(舞鳳山)은 봉황이 춤을 추는 모습과 같다해 붙여진 이름이다. 옛 유산록에는 무봉산 자락에 여러 개의 혈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산자락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중요한 건물들이 위치하고 있다. 서북쪽에 LG전자, 서남쪽에 한국야쿠르트, 남쪽에 진위향교, 동남쪽에 만기사 등이다. 이중 어디가 주혈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산의 면배를 가릴 필요가 있다. 산에는 앞면과 뒷면이 있기 마련이다. 앞면을 면(面), 뒷면을 배(背)라고 한다. 이를 구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산줄기의 완급으로 구분한다. 산봉우리나 능선에 올라서 보면 한쪽은 완만하고 다른 한쪽은 가파르다. 완만한 쪽이 면이고 가파른 쪽은 배에 해당된다. 두 번째는 산맥의 굽은 상태를 보고 알 수 있다. 활처럼 굽은 안쪽이 면이고 바깥쪽은 배이다. 세 번째는 주변 산들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를 본다. 주변 산들이 다정하게 향하고 있으면 면이고 등을 돌려 무정하게 달아나고 있으면 배다. 네 번째는 산이 험한지 순한지를 보고 판단다. 순한 쪽은 면이고 암석이 많은 험한 쪽은 배다. 풍수적으로 좋은 곳은 당연히 면 쪽에 있다. 이는 지형도나 위성사진을 보고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위성사진으로 진위면 무봉산을 보면 면 쪽에 경주이씨 선산이 있다.

산은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각기 달라 보인다. 동천리에서 주산인 무봉산을 바라보면 우뚝 솟은 봉우리가 둥글게 생겼다. 이를 풍수에서는 귀인봉이라 한다. 그 뒤를 한일자처럼 생긴 일자문성이 받쳐주고 있다. 귀인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모양이니 문무겸직의 인물 배출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무리 산세가 좋더라도 맥을 받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무봉산의 주맥은 마을의 주택보다는 경주이씨 선산으로 이어져 있다. 양택보다는 음택이 발복할 자리인 것이다. 이곳은 현무, 주작, 청룡, 백호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그러나 흠도 없지 않다. 청룡과 백호 끝이 완벽하게 교차하지 못하고 밖을 향해 달아나는 형세다. 이점만 비보해준다면 발복이 더 오랫동안 갈 것으로 보인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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