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肅宗)은 조선의 19대 임금이다.

생애에 인경왕후와 인현왕후, 옥산부대빈 장씨, 인원왕후를 들였다.

옥산부대빈 장씨는 사극의 단골 소재 ‘장희빈’이다.

숙종은 장희빈을 소재로 한 사극에서 우유부단한 이미지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실제 성격은 다혈질이었다.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는 ‘내 배로 낳았지만 그 성질은 아침, 점심, 저녁 때마다 달라 감당할 수가 없다’고 했다.

숙종은 특히 정치판에서는 냉철한 고단수 정치가였다.

유감없이 자신의 성질을 드러낸 적이 많았다.

또 조선 역사상 유례없이 강한 왕권을 지녔다.

이 때문에 머리좋은 신하도 잘 ‘갈구는’ 임금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관명(李觀命)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는 조선시대 후기의 올곧은 신하로 손꼽힌다.

숙종 13년에 과거시험 중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임금이 성균관의 문묘에 참배한 후 치르는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해 대제학에 올랐다.

하지만 경종 1년에는 모함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했다.

이듬해에는 아우 건명(健命)이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극형을 받게 되자 연좌(緣坐)돼 덕천으로 유배됐다.

영조가 즉위해서야 유배에서 풀려나와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냈다.

노론과 소론이 극에 치닫는 시비를 벌이는 과정에서 제법 적잖은 굴곡을 격은 셈이다.

그는 관직을 거치면서 백성들이 악정에 시달려 생활하는 것을 잘 보살폈고 시대의 잘못된 폐단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상소를 많이 올린 올곧은 신하로 평가된다.

그가 올곧은 신하로 손꼽히는 일화가 있다.

숙종 때 당하관 벼슬을 지내다가 암행어사(暗行御史)로 발탁돼 영남지방을 시찰하고 돌아왔을 때다.

숙종은 백성들의 민폐가 없는지 물었고 그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통영에 소속된 섬 하나가 대궐 후궁의 소유로 돼 있다는 것을 고(告)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섬 관리(管理)의 수탈이 너무 심해 백성들의 궁핍함을 차마 눈뜨고 지켜볼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숙종은 벌컥 화를 냈다.

임금이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내준 것이 그렇게 불찰이냐고 호통쳤다.

그러나 이관명은 이에 조금도 굽히지 않고 작심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어명(御命)을 받들고 암행어사로 밖에 나가있는 1년동안 어떤 대신들도 전하의 지나친 행동을 막지 못한 모양입니다. 저를 비롯해 이제껏 전하에게 직언(直言)하지 못한 대신들도 법으로 다스려 주십시오.”

숙종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많은 신하들 앞에서 창피를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승지를 불러 전교(傳敎)를 쓰라고 명령했다.

신하들은 숨을 죽였다. 이관명에게 큰 벌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 예상은 빗나갔다.

숙종은 이관명에게 부제학(副提學)을 제수했다.

이어 홍문제학(弘文提學)을 제수했다.

정3품(正三品) 미만의 당상관이었던 이관명이 종2품(從二品)으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숙종은 다시 승지에에 명령을 내렸다.

“홍문제학 이관명에게 예조참판(禮曹參判)을 제수한다.”

숙종은 이관명에게 말했다.

“경의 간언으로 이제야 과인의 잘못을 깨달았소, 앞으로도 그와 같은 신념으로 과인의 잘못을 바로잡아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오.”

권력 앞에서 그릇된 것을 지적한 이관명의 용기도 훌륭하지만 올곧은 신하를 알아보는 숙종의 안목도 돋보이는 일화다.

이는 요즘 올곧은 공무원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 대한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정 전 부속비서관 측은 대체로 대통령의 뜻을 받들었다고 했다.

안 전 정책조정수석 측은 법정에서 대부분 대통령의 얘기를 듣거나 지시에 따라 행동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명문대를 나왔다. 고위직 공무원과 대학교수를 지냈다.

대한민국의 컨트롤 타워에서 일 할만 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렇지만 민은(民隱)을 잘 보살피고 시폐(時弊)를 시정하는 데 어두웠다.

박근혜 대통령의 행동도 밝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요즘 세종대왕의 어록이 회자된다.

‘임금이 덕이 없고 정치를 잘못하면 하늘이 재앙을 보내 하늘이 경계시킨다’고 하는데, 지금 가뭄이 극심하다. 대소 신료들은 제각기 위로 나의 잘못과 정령의 그릇된 것과, 아래로 백성들의 좋고 나쁨을 거리낌 없이 마음껏 직언하여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걱정하는 나의 지극한 생각에 부응되게 하라.'

구자익 인천본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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