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머리 행정에 'AI 방벽' 먹통...남지사 권력누수 비판 목소리도

사상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가 경기도 전역을 휩쓸고 있는데도 경기도재난안전시스템은 여전히 ‘선(先)조치후(後)보고’를 허용하지 않는 낡은 책상머리 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선 시·군에서 예산을 집행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경기도재난안전대책본부장인 남경필 경기지사가 일주일 전에 결정한 ‘경기도형 AI방역 대책’을 시행조차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남 지사의 도정 장악력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나타나고 있는 일종의 누수현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 19일 남 지사 주재로 열린 AI가축방역대책회의에서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10만 마리 이상 가금류를 사육하는 농장에 임시 이동 방역시설을 설치키로 했지만 26일까지 단 1곳의 농장에도 방역대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농가 진입로 입구에 임시 이동 방역시설 설치가 필요한 농가는 35곳으로 파악됐고 필요한 예산도 이미 확보돼 있지만, 방역 일선에 예산을 선집행후정산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지 않은 탓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올해 예산은 내일(27일)까지 써야 하는데, 일선 시·군에 예산을 내려보내주게 되면 집행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해 직접 구입해서 설치해주기로 했다”면서 “금주중에 화성·김포·파주·연천 등 11개 시·군 35개 농가에 설치 완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농가 정문 앞에 이중삼중 방역대를 구축하는 방법이 그마나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중 하나였지만, 방역 일선에 전권을 위임해주지 않은 탓에 일주일 넘게 말로만 방역성을 쌓고 있는 황당한 결과가 초래되고 있는 셈이다.

일선 시·군 관계자들은 “현장에서는 분초를 다투고 있는데도, 경기도재난안전대책본부는 너무 한가하다”면서 “예산을 선집행후정산 하도록 해줬으면 일주일전에 방역시설을 설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급한 쪽은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일선 시·군이었다.

화성시의 경우 경기도 지원이 늦어지자 지난 24일 농가 2곳에 자체 예산을 들여 임시 이동 방역시설을 설치했다.

화성시 관계자는 “마냥 경기도 지원만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해 1곳당 200만 원씩 들여 임시 이동 방역시설을 설치했다”면서 “일당 15만 원을 지급하고 방역인력을 배치해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농가에 드나드는 차량과 사람에 대한 소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선 시·군과 논의해서 마련한 방역 대책이 겉돌자 남 지사가 진두지휘하고 있는 경기도재난안전대책본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익명을 원한 한 관계자는 “경기도재난컨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남 지사가 정치활동과 도정을 병행하다보니 흐름을 놓치고 있는 것 같고, 덩달아 도청 시스템도 고장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만구·황영민기자/prime@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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