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이 휘몰아치고 있는 정치권은 개헌을 통해 자신들의 잘못을 덮으려는 몸부림을 치고 있다. 과연 우리 헌법이 시대에 맞지 않고 제왕적 대통령제 구조라서 헌정 파괴적 사고가 발생한 것인지, 탄핵정국이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인지, 국회의원들은 기존 정당에서 탈당하면서 새로운 정당을 설립하면 면책이 될 문제인지, 그리고 야당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지 등에 대한 논의는 잠잠하다.

1919년 임시정부로부터 시작된 우리 헌정사는 이제 100년 조금 넘는 동안 6차례의 중대한 헌법 개정이 있었다. 이렇게 헌법의 수명이 평균 20년을 넘기지 못한 원인은 모두 정치인들의 정치적 야욕에 의한 것이었다. 대통령제냐 의원내각제냐를 두고 싸우고, 장기집권을 위해 대통령 선출 방식을 고치는 것이 헌법 개정의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도 잘 살펴보면 자리 나눠먹기의 명분에 불과하다. 우리의 정당구조, 정치문화, 선거구조 아래에서는 아무리 통치구조를 바꾸더라도 말짱 도루묵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적이지 못한 정당, 현역 위주의 정당시스템, 지역대표성이 강한 소선구제, 선거 때만 되면 시끄러운 공천절차 등은 헌법이 아니라 헌법에 의해 위임받은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의 개정을 통해 바뀔 수 있다. 헌법이 아니라 국회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현행 87년 헌법 어디를 살펴봐도 별 문제가 없다. 민주화의 산물인 헌법이며, 국민의 기본권이 강화되고 헌법재판소라는 제도를 도입한 멋진 헌법이다. 반드시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면, 대통령 단임제나 부통령이 없는 상황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 단임제는 장기집권을 뿌리 뽑기 위한 국민적 합의에 의한 것이었고 그 가치는 지금도 유효하다.

대통령 유고의 경우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지만, 권한대행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고 대행 자체가 임시적이니 그리 쟁점화할 필요가 없다. 미국은 대통령 4년 중임제 아래에서도 레임덕이 있으며, 오바마 대통령이 레임덕 없이 임기를 마치는 것으로 보아 제도적 쟁점이 아니라 대통령의 리더십의 문제로 보인다. 즉 훌륭한 대통령이라면 5년 단임으로도 레임덕 없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제가 과연 제왕적인가? 그렇다면 87년 헌법 아래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제왕적이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제왕적이지 않았다. 똑 같은 헌법이라도 지도자가 어떤 리더십을 가지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는 히틀러를 비난해야 하는가 아니면 바이마르 헌법을 비난해야 하는가의 문제와 같다.

오히려 국회가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해서 헌정이 파괴된 것이라는 반성은 왜 하지 않는가. 후보시절부터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내걸고,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해서 당선된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대통력과 정말 친하기 때문에 우리 지역에 더 많은 예산을 끌어 올 수 있고 나는 정말 힘이 세다고 힘자랑하던 국회의원들은 또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정치를 수렁에 빠뜨린 자들은 바로 이들이다.

그런데 헌법에 의해 4년 임기가 보장된 국회의원들에게는 선거가 앞으로도 3년이나 남아 있다. 4년짜리 보험 중 3년이나 남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기 보다는 헌법에게 책임을 돌리고 이를 개정하면 우리 정치가 투명해지고 갈등이 없어질 것이라고 국민들을 속이려 하고 있다. 국회가 헌법 개정의 정당성을 조금이나마 가지려면 먼저, 국회해산과 국회의원 소환제부터 도입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옳다. 이 정도의 헌정 파괴 상황에서, 양심 있는 국회의원이라면 의원직 사퇴를 했어야 한다.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하고 행정부를 감독하는 역할을 다했다면, 최순실이라는 특정 개인이 헌정을 파괴하고 대통령이 탄핵되는 사태에 이르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당은 대통령에 쓴 소리를 하기 보다는 맹목적으로 옹호했고, 야당은 정치보다 비난과 발목잡기에만 집중하면서, 국가와 민족의 미래보다는 자신들의 다음 선거를 생각했다는 자기반성은 하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헌법 개정을 주장하기 전에 우리 헌법 전문이라도 꼼꼼히 읽어보기 바란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계승, 사회적 폐습과 불의 타파, 기회균등,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 등 그 어느 단어 하나 버릴 수 없다. 도대체 헌법의 무엇이 문제인가.

류권홍 원광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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