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丁酉年) 벽두부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적절하게는 생각되지 않지만 갑자기 데자뷰를 보는 것 같아 필자의 개인적 경험을 글로 옮겨보고자 한다.

작년 여름일이었다. ‘꺼지시랍니다’ 피고인 면담을 하러 들어갔던 접견실에서 담당 교도관이 어이없는 얼굴로 필자에게 던진 한마디. 이 말을 듣게 된 경위는 피고인에 대한 전문가 의견서를 작성해달라는 법원의 요청으로 구치소로 그를 만나러 갔다가 벌어진 해프닝 때문이었다. 그는 전과 22범으로 만기출소 후에도 여전히 반성의 기미 없이 여성을 마트에서 납치해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하여 전국으로 끌고 다니다가 서울 성수동으로 돌아와 검거된 자였다. 수많은 전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또 여성을 끔찍하게 살해한 그의 정체에 의문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하여 직접 그를 만나 면담을 하라고 재판부가 요청을 했었으나, 법원의 명령으로 그를 만나러 갔던 자리에서 단칼에 면회를 거절당하였다.

재판을 앞둔 피고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뜻이 재판부에 제대로 전달되기를 원한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형사절차에 적극 협조하는 반면 이 피고인은 전문가를 만나는 일뿐 아니라 국선변호인 접견, 그리고 법정 출두까지 모든 것을 거부하였다. 개인적으로 지난 십 수 년 간 이 일을 해왔지만 이런 피고인은 처음 보았다. 자신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이라도 있다면, 사법절차 전반을 깡그리 무시하는 이런 태도는 보이지 않으리라.

물론 면담을 거부하면서 ‘꺼져’라고 소리치는 태도 역시도 그의 반사회적인 면모를 반영하는 것이라, 수사기록을 참조하여 의견서를 작성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수감동까지 사람을 오게 한 다음에서야 안만나겠다는 통첩을 보내 온 그의 태도에 조금은 분개감이 들었다.

그가 애초에 여자를 납치하였던 동기는, 출소 후 배달 일에 종사하던 중 일어났던 소소한 폭력사건 때문이었다. 오토바이를 몰던 그 앞에서 차량이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차량 운전자와 싸움이 붙었고, 이 사건은 결국 피해자임을 주장하며 억울해하던 그의 입장에 반하여 쌍방폭행으로 결론이 났다. 담당 경찰의 이런 결론에 불만을 품은 그는 폭행 상대방과 담당 경찰에 복수를 하기로 결심하였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결국 연락을 모두 끊은 이들을 유인하는 데에는 묘령의 여성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하였고 그래서 그는 여성을 납치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납치 건은 실패로 돌아갔고 두 번째 납치에 성공한 피해 여성 역시 완강하게 저항을 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앙심을 품고 여성을 살해하였던 것인데, 피고인 자신은 이런 경위에 대하여 모두 왜곡하여 지각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였다.

없는 가정에서 자랐으며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하였고 소년원부터 수없이 수용시설을 들락거렸던 이유, 그리고 이번에도 자가용을 몰던 젊은 청년과 사법기관 종사자였던 담당 경찰,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청을 거절하고 도망만 치려한 피해여성, 모두가 바로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가해자라고 여겼다. 이로 인한 재판 역시 일종의 함정 같은 것이어서 모두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는 변호인 접견도 거절하고 재판도 출석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재판부로 탄원서를 자주 보냈는데, 탄원서의 내용은 전부 현실을 왜곡한 일방적 궤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경찰이 얼마나 부패하였는지, 폭행 당사자인 차량 주인이 경찰을 매수하여 어떻게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었는지, 심지어는 피해 여성까지 자신을 어떻게 모욕하였는지,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전혀 검증되지 않은 이 같은 주장은 읽어볼수록 그가 왜 재판에도 불출석 하면서 변호인조차 신뢰하지 않게 된 것인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뿌리 깊은 피해의식...

법치주의 국가에서 사법제도를 신뢰하지 않고 수사에도 재판에도 협조하지 않는 태도는 결코 정당화되기 힘들다. 개인적인 불신이나 피해의식 역시 변명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물며 국가의 원수가 심판의 대상이 되는 내용을 조사받지 아니하고 언론플레이만 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물며 형사범도 자신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이 없지 아니할 것인데, 이 모든 쟁점이 탈탈 털어져서 다투어져야 하는 곳은 법정이다. 결코 언론을 통해 만백성을 향한 일방적 자기주장이 전달되어서는 안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심판의 대상이 되는 개인사를 억울하다고만 주장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장면을 보는 누가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처벌에 순응하겠나? 다투어져야 할 곳은 법정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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