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가 약세다.

원·달러 환율이 1천2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 22일이다. 미국의 1달러가 우리나라 돈 1천200원의 가치를 넘는 셈이다. 등락(騰落)이 있기는 하지만 원·달러 환율은 새해에도 1천200원을 웃돌고 있다.

원화 약세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본격화 됐다. 특히 지난해 11월 8일부터 연말까지 원화는 달러화 대비 6.5% 절하됐다. 이 기간에 멕시코의 페소화는 11.5%나 절하됐고 말레이시아의 링기트화는 6.9%가 내려갔다. 원화가 주요 신흥국의 통화(通貨) 중 멕시코의 페소화와 말레이시아의 링기트화에 이어 약한 통화가 된 것이다.

통상적으로 원화는 대표적인 글로벌 리스크 지표다. 원화 약세는 금융시장 불안이나 신흥국 리스크 부각에 따른 ‘선진국과 신흥국간의 채권 금리차’(EMBI spread) 상승을 동반한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8일 이후 EMBI spread와 동조화되지 않는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국내의 요인이 가세해 원화 약세가 지속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게 금융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2010년 6월에 원화가치가 급격히 떨어졌을 때도 그랬다. 당시 그리스의 재정위기 심화라는 글로벌 리스크에다 남북관계가 긴장국면으로 접어드는 천안함 사태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최근 원화의 약세는 국회의 대통령 탄핵의결 등 정치적 불안 요인도 있다. 여기에다 국내 심리지표 부진 등 내수경기 악화 우려에 따른 통화정책 대응 가능성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급등했지만 지난해 11월 24일 1.82%에서 12월 말 1.64%로 18bp 하락했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에는 하락세가 더욱 가속화됐다. 이 기간 중에는 소비자동향과 산업활동동향 등 경기둔화를 시사하는 지표가 발표되면서 내수 부진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일본(-3bp)이나 독일(-2bp)의 2년물 단기금리 조정폭이 미미했다. 국내의 요인 때문에 금리가 하락하고 원화가치가 약해졌다고 해석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수출기업들은 앞으로 원화의 향방을 가늠할 때 국내·외 요인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올해 1·4분기 말이 원화 방향성의 분기점일 가능성이 높다. 금융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 전망치로 1천100원을 내놓고 있다.

최근 달러화의 등락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궤적에 대한 시장과 Fed간의 인식차이가 확대되거나 축소 여부에 의해 결정됐다고 보고 있다. 특히 지난해 연말을 전후로 매파적인 Fed에 대한 기대가 다소 누그러지면서 앞으로 달러화 강세가 주춤해 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FOMC 직후 1.27%까지 상승했던 미국의 국채 2년물 금리는 연말에 1.18%로 하락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Fed 투표 구성원들의 성향이 ‘비둘기파’로 변하고 있는 점도 Fed가 앞으로 매파적인 스탠스를 취할 가능성이 제한적일 것으로 짐작된다.

금융시장에 반영된 매파적 Fed의 기대도 더욱 완화될 개연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미국과 독일간 단기금리차 축소와 10년 실질금리차가 줄어들면서 달러·유로 환율이 상승한 것도 주목해야 한다.

달러·유로 환율은 지난해 12월 20일 1.0389를 저점으로 연말에 1.052까지 올랐다.

선진국간 통화정책 방향성 차별화로 일방적인 달러 강세도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럽중앙은행(ECB)의 월간 자산 매입 규모가 줄어드는 올해 2분기 초 전·후로 달러화 지수가 완만한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가운데 국내의 요인에 의한 원화의 약세·압력은 올해 1분기에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택시장에 대한 규제 지속과 제2금융권에 대한 여신심사 강화로 국내 주택경기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이 이어지면서 소비심리 부진과 국내 단기금리 하락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탄핵정국 등 정치적 불확실성도 당분간 원화의 약세·압력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원화의 약세 이유가 국내에 있다는 점이 증명되고 있는 만큼 정치권의 꼼꼼한 집안 단속을 기대해 본다.

 

구자익 인천본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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