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예로부터 음력 정월 초하룻날을 닭의 날이라고 했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은 붉은 닭의 해다 60갑자(甲子)의 34번째 해 정유년이 시작되었다 붉은 빛의 수탉의 불의 기운을 뜻한다는 정(丁)과 닭을 의미하는 닭유(酉)의 해로 부른다. 이유는 십간(十干)중의 하나인 정(丁)은 오행사상에서 붉은 색을 뜻하고 열두 지지(地支)의 하나인 유(酉)가 닭을 뜻하기 때문이다. 올해가 지나 정유년이 돌아오는 해는 정확히 60년 후인 2077년이며 이전의 정유년은 1957년이었다. 암울했던 정유년 우리나라 불운(不運)의 역사를 보면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과 1897년 정유년은 대한제국이 설립되면서 일본의 침략으로 망국(亡國)의 한속에 식민통치로 주권을 빼앗겼다. 2017년 올해 정유년은 대통령의 탄핵심판과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해다. 닭의 울음은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려주는 예지(叡智)의 능력이 있기도 하다 장닭의 날개로 훼를 길게 세 번 치고 꼬리를 흔들면 산에서 내려왔던 맹수들이 되돌아가고 잡귀들의 모습을 감춘다 하였다. 닭이 여명(黎明)의 상징인 것은 고전 소설 심청전에서 심청이 뱃사공에 팔려가는 날 아침에 닭이 닭아 울지 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고 한 말에서 알 수 있다. 시계가 없던 시절이니 밤이나 흐린 날에는 닭의 울음소리로 시각을 알았다. 특히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면 닭의 울음소리를 기준으로 하여 뫼를 짓고 제사를 올렸다. 수탉은 정확한 시간에 울었으므로 그 울음소리를 듣고 밤이 깊었는지 날 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조선 후기 유학자 하달홍은 축계설(畜鷄設)에서 한시외전의 고사(古事)를 인용해 기원전 유교문화 한(漢)나라에서 닭은 다섯 가지 덕목을 품고 있다고 예찬했다. 머리에 붉은 벼슬관(冠)을 썼으니 문(文)이고 적을 보면 예리한 발톱으로 용감하게 싸우는 것은 용(勇)이며 먹이를 보고 꼭꼭거려 무리를 불러 모아 먹인다하여 인(仁)이라 했다. 때를 맞추어 울어서 새벽을 알림은 신(信)이라 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닭 머리에 있는 볏 관을 쓴 모습으로 여겨 서재에 닭의 그림을 걸고 과거급제를 염원했으며 학문적 성취를 기원했다. 닭은 지도자의 탄생을 예고하는 영물이기도 하다 신라 시조(始祖)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고 삼국유사의 김알지 신화가 대표적이다. 호공이라는 인물이 신라 도읍인 월성을 지나다가 나뭇가지에 황금궤를 봤는데 하얀 닭이 궤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서둘러 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왕이 친히 궤를 열었더니 사내아이 김알지가 금궤에서 나왔다. 하얀 닭은 나라를 통치할 인물의 탄생을 알리는 상서로운 동물이었다. 김알지가 태어날 때 숲에서 닭이 울었다하여 지명(地名)을 계림이라 하였다. 또 액(厄)을 막는 동물로 알려져 민간신앙에서는 밤에 떠돌던 귀신이나 요괴도 닭울음소리가 들리면 일시에 사라진다 믿었다. 이러한 상징성 때문에 전장(戰場)에서도 유용했다. 삼국시대 고분벽화에서 전사(戰士)들이 머리에 닭 깃을 꽂고 있는 것이나 서양에서 알렉산더대왕이 닭을 사육하는 신관(新官)을 전장의 참모로 삼는 것은 모두 닭이 가진 광명의 힘으로 전투력을 높이고자 하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또 다산(多産)의 상징인 닭의 매일같이 알을 낳아 병아리로 깨어나며 자손번성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결혼식 초례상에는 반드시 닭이 필요했다. 신랑 신부가 초례상을 가운데 두고 백년가약을 맺을 때 일류지대인 혼례에서도 닭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한 해는 정말 힘든 한 해였다. 그래서 새해만큼은 닭이 오덕을 지녔다지만 인(仁)과 신(信) 그 덕만이 라도 갖추어 서로 믿고 배부르고 등 따스한 경제를 위해서는 정치가 잘되어 가야 하는 소망을 성취하는 해로 기록되길 기대해 본다.


이명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향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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