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담당 기자에게 새벽 인력시장 두 곳을 추천 받았다. 모란시장 입구와 태평역 6번 출구 인근 인력사무소다.집에서 가까운 새벽 인력시장을 가볼 심산이었다. .새벽 인력시장은 품을 팔아 끼니를 때우고 생계를 이어가는 서민들의 마지막 보루다. 불황이 장기화되고 ‘김영란 법’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까지 겹쳐 서민생활이 갈수록 궁핍해진다는 기사는 자주 접하고 있지만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인력시장에 의지해 생계를 이어가는 서민들이 바라보는 세태(世態)도 궁금했다. 

토요일인 지난 7일 새벽 5시20여분께 모란역에는 품을 팔기 위해 모여든 일용직 노동자 수십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동남아에서 온 듯한 외국인도 눈에 들어왔다. 모란시장 입구에 길게 늘어선 승합차 안에는 일을 얻은 노동자들이 대기 중이었다. 1시간 30여분이 지나자 어림잡아 절반 정도는 일을 구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했다는 성모(54)씨는 “날씨가 추워지면서 일감은 줄었는데 일을 찾아 나오는 사람은 더 늘어난 것 같다. 경기가 풀려 일감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되돌아갔다. 

일을 얻어 그나마 기분 좋게 승합차에 타 있던 그들에게 몇 가지 물었다. 그들의 ‘소망’은 평범하고 소박했다. 가족의 건강과 일자리였다. 정치인 이야기를 꺼내자 욕부터 쏟아냈다. 국민을 위하는 대통령이 나와 서민들도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모란역을 떠나며 가정맹호(苛政猛虎)란 말이 생각났다. 공자(孔子)가 태산 옆을 지나가는데 어떤 부인이 무덤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를 시켜 그 연유를 묻게 했다. 부인이 대답했다.  “얼마 전에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고,남편이 또 호랑이에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아들이 호랑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 공자가 “왜 떠나지 않았습니까”하고 묻자 부인은 “가혹한 정치 때문입니다. ”라고 답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가르침을 줬다고 한다. 예기(禮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은 혹독하다. 한반도 주변 열강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흡사 구한말(舊韓末) 데자뷰다. 중국은 사드 배치에 반대하며 경제·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일본은 위안부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외교적 공세에 나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도 일본 도요타,중국 알리바바 등 글로벌 기업을 압박해 미국에 대한 투자 항복을 받아내고 있다. 

이처럼 외줄을 타고 열강 바람에 흔들거리는 대혼돈에 빠져들고 있는 절체절명 와중에 중심을 잡아야 하는 정치권은 여야(與野),여여(與與),야야(野野) 가릴 것 없이 국가안위와 민생은 팽개치고 기득권,계파이익,정권잡기 싸움만 하고 있다. 잠룡들까지 지지를 얻기 위한 ‘말꾼’ 싸움에 가세했다. 자신들의 세 치 혀에 나라가 휘청거리고 민심이 갈기갈기 찢기는데도 아랑곳 않는다.  그렇게 해서 당선된 대통령은 또 한 명의 불행한 대통령이 될 게 뻔하지만 남 이야기다. 

미국 사우스다코다주의 러시모어산에는 4명의 대통령 얼굴이 조각돼 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에이브라함 링컨,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얼굴이다. 

이 산에 조각돼 있는 4명의 대통령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대한 대통령들로 꼽힌다.  건국의 아버지요,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이요,노예해방의 기수요,해외진출의 키잡이였기 때문이다. 또 나라를 만들고,다듬고,분열을 막고,발전시킨 지도자들이다. 

4명의 대통령을 러시모어산에 모시게 한 위대함의 본질과 미국에서 성공한 대통령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들이 지닌 남다른 자질,대통령으로서 후세에까지 존경을 받게 만든 자질은 무엇일까. 이들의 공통점은 위기상황에 직면해 역사의식이 뚜렷하고 민심의 흐름을 바로 인식하는 가운데 단호하게 국가운명을 앞장서 결정짓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말로 강력한 리더십이다. 

그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처칠 수상이나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도 이 범주에 속한다. 처칠과 드골이 미국인이었다면 족히 러시모아산 두상(頭像)대열에 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정은 어떠한가. 북한산에 있는 어느 높은 바위봉우리를 깎아 얼굴을 새겨,자손만대가 우러러보게 할 그런 위대한 대통령이 있었는가. 짧은 역사 탓도 있지만,불행히도 우리는 역사상 영웅을 찾지 못했다. 마음속에 신화를 남긴 대통령도 없었다.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임기가 끝난 후에 쫓겨나고 감옥 가고 친인척 구속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언제쯤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대통령을 볼 수 있을까. 

김광범 중부일보 상무이사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