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집행률 100% 육박...올해도 감액 없이 예산 편성

  세금에서 나오는 공무용(公務用) 업무추진비(일명 판공비)가 내부 직원용 회식비로 낭비되고 있다.

경기지역 지방정부, 지방의회, 산하 공공기관 등은 이구동성으로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 사실상 판공비를 쓸 곳이 없다고 하소연 했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15일 중부일보 취재결과, 대부분의 시장·군수와 부시장·부군수, 실·국장 등은 지난해 판공비를 거의 100% 사용했고, 올해도 총액을 줄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군 관계자들은 “직무관련성 때문에 판공비 사용에 큰 제약을 받게 되면서 대외업무 협조 비용이 대폭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해의 경우 상당액을 앞당겨 사용한 영향으로 사용액 자체가 감소하지는 않았다”면서 “법 시행 이후에는 직원 격려용으로 쓰여지는 경향이 뚜렸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혈세가 공무원과 준(準)공무원 등을 위한 그들만의 쌈짓돈화하고 있는 셈인데, 판공비라는 특수성 때문에 스스로 ‘파이’를 줄이지 못하고 있는 탓에 점점 더 많은 세금이 회식비로 낭비되는 악순환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위 공무원들은 김영란법이 낳은 ‘불편한 현상’중 하나라면서 판공비 사용 기준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공공기관에서 쓸 수 있는 판공비는 기관장 업무용인 시책업무추진비와 직원 경조사비용 등 기관 운영경비인 기관 운영업무추진비로 구분된다.

안양시에 따르면 지난해 시장은 시책업무추진비 1억4천160만 원 중 99.7%인 1억4천126만 원 사용하고 34만 원을 잔액으로 남겼다. 부시장도 같은 예산 5천230만 원 중 5천219만 원을 사용하고, 11만 원만 반납했다.

안양시가 올해 본 예산에 확보한 시장의 시책업무추진비는 지난해보다 1천600만원이 줄어든 1억2천560만원이고, 부시장은 지난해와 같은 5천230만 원이다.

안양시 관계자는 “지난해 시장과 부시장의 기관운영업무추진비는 전액 사용했다”고 말했다. 외부 인사용으로 사용되는 지난해 기관 운영업무추진비 총액은 시장 7천920만 원, 부시장 5천610만 원이었다.

양주시장은 지난해 1억7천400만 원중 1억7천273만 원을 사용했고, 부시장도 8천910만원 중 8천826만 원을 썼다. 시장과 부시장의 판공비 집행률은 100%에 육박한다.

김포시장은 지난해 판공비(시책+기관) 1억6천533만 원중 94%인 1억5천529만 원을 집행했고, 김포부시장은 9천324만 원중 35만 원만 남겼다.

고양시장은 지난해 기관운영 업무추진비 7천920만 원 전액을 썼고, 1·2부시장은 5천610만 원중 각각 93만8천원과 30만 원을 남겼다.

남양주시장도 기관운영 업무추진비 7천920만 원 중 7천852만4천 원을 썼고, 부시장은 5천610만 원중 5천587만 원을 사용했다.

일부 시장·군수와 부시장·부군수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판공비 집행률이 95% 이상이고, 실·국장들의 사용액도 100%에 육박했다.

군포시 관계자는 “기관운영업무추진비는 소속 직원 경조사비용과 직무수행과 관련된 통상적인 경비로 사용된다”고 했다.

경기지역 31개 시·군이 올해 본 예산에 편성한 판공비 총액은 지난해와 같거나 소폭 감소한 규모였다.

시·군 관계자들은 “행정자치부 예산편성지침에서 정하는 기준에 따라 판공비를 편성했다”면서 “사실상 기관운영업무추진비는 해마다 부족했고, 시책업무추진비는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풀로 확보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영란법이 판공비에 미치고 있는 영향은 감안하지 않고 일단 정부 기준에 맞춰 예산부터 챙겨놓은 것인데, 집행하지 힘들어진 예산이 기관 내부 회식용 등으로 쓰여지는 ‘나쁜 예산’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시·군 공무원들은 “통상 매년 이맘때 정기인사가 이루어지면 회식이 많아지곤 했지만, 올해는 부쩍 더 늘었다”면서 “국·과장들이 어차피 쓸 곳도 없다며 업무추진비를 직원 격려용으로 사용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복수의 부시장·부군수들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사실상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수 없게 되다시피해 국장·과장들에게 직원 격려용으로 쓸 수 있도록 양도해주곤 한다”면서 “나 홀로 업무추진비 총액을 줄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진해서 반납할 수도 없는 계륵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이들은 “업무추진비가 직원 경조사비용과 회식비용으로 쓰여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내수촉진 등을 고려해 명백하게 공무용이거나, 명절 선물 정도는 금액 제한을 풀어주는 등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정인기자·지역종합/jioh@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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