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에게 1950년 한국전쟁은 역사 이래 가장 비극적인 전쟁이었다. 동족 간 전쟁이라는 점도 그렇고 여기에 적대적 냉전이데올로기가 뒤섞인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피해도 엄청나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남·북한 합해서 총 300~400만 명 정도의 사상자가 나왔고, 전사자도 140여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이 중에 군 전사자가 급증한 시기는 전쟁 초기가 아니라 1951년 6월 휴전협상이 시작된 후 2년간 벌어졌던 이른바 ‘고지쟁탈전’에서였다. 몇 년 전에 상영되었던 영화 ‘고지전’에서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되었던 것처럼, 유엔군과 북한군은 휴전협상에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무모할 정도의 ‘땅따먹기’ 싸움을 벌였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백마고지’는 물론이고 병사들의 피로 물들었다는 ‘피의 능선’, 포격 때문에 내장이 끊어질 정도라는 ‘斷腸의 능선’ 등이 그 처절함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오죽하면 1968년 미육군성이 발행한 한국전쟁 공식간행물에서는 이를 두고 ‘휴전천막과 싸우는 전투(Truth Tent and Fighting Tent)’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승패와 무관한 이 어처구니없는 ‘땅따먹기’ 전쟁의 피해는 엄청났다. 휴전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미군과 UN군은 북한의 산업시설들을 집중 폭격했고, 북한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후방교란을 위해 집요한 게릴라전을 벌였다. 이 때문에 병사들뿐 아니라 민간인들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이로부터 60년이 더 지난 지금 우리는 또다시 무모한 ‘고지전’을 목격하고 있다. 헌법 재판소라는 ‘텐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통령 탄핵소추 심판’을 둘러싼 싸움이다. 탄핵을 면하려는 대통령 측과 탄핵을 요구하는 측간에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백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검찰, 특검, 국회 특위가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문제를 전 방위적으로 수사 또는 조사하고 있고 청와대 앞이나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연일 찬·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에서도 찬·반 주장들이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 중에는 나름 논리적인 주장들도 있지만 근거를 알 수 없는 일방적 주장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허위사실이나 욕설도 적지 않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 마치 ‘촛불 숫자 대 태극기 숫자’ 싸움판이 되어 버린 듯 한 느낌이다. 싸워야하는 이유도 모르고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총칼을 겨눴던 6.25전쟁 고지전과 흡사하다. 이렇게 싸워서 이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과연 우리 모두에게 무슨 득이 될지 크게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탄핵을 둘러싼 이전투구의 폐해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이미 작년 초부터 위험신호를 보였던 우리 경제는 더욱 침체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모습이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주변 강대국들은 갈등이 되었던 이슈들을 들쳐 내며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사드배치, 일제위안부협상, 무역장벽 등 우리국민 전부가 힘을 모아 대응해도 쉽지 않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한 답은 분명하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대통령 탄핵 문제를 냉정하게 그렇지만 조속하게 결론내리는 것이다. 정치적 의미의 탄핵은 국회에서 이미 이루어졌고 지금은 헌법재판소의 법률적 심판만 남았다. 이를 군중시위나 SNS를 통한 여론몰이로 해결하려 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또한 탄핵을 요구하는 측이나 막으려는 측 모두 성실하게 탄핵심판 절차에 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처럼 특검 수사는 물론이고 탄핵심판 절차 자체를 의도적으로 회피 혹은 지연하는 이른바 ‘게기는’ 작태를 보여서는 안되고, 헌법재판소라는 탄핵법정을 정치적 여론몰이 장으로 만들어서도 안된다. 만약 지금처럼 짜증나고 또 야비하기까지 한 ‘지연전’이 계속된다면 한국전쟁 당시 ‘고지전’보다 더 큰 폐해를 남길 수도 있다. 어쩌면 나라를 통째로 위기에 빠트릴 지도 모른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탄핵심판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어쩌면 대통령이 그토록 자부해왔던 ‘오직 대한민국만 생각하고 대한민국만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르겠다.  

황근/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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