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특검의 칼끝이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으로 향하고 있는 가운데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이 특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이들이 거짓말과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이 뚜렷해지면서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이들은 이미 청문회 등에서 공통적으로 최순실과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고 하다가 분명한 증거 앞에 말을 바꾸기도 했다. 문화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문화예술인들을 억압하는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이행했다는 것은 정권의 후진성과 권력의 부도덕성을 보여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현재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문화예술인들은 법적 대응을 위한 단체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법률대응 모임은 소송대리인단 천 명을 구성하여 2월 중에 정부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자 단체소송 원고를 모집하고 있다. “국가기관이 권한을 남용함으로써 표현의 자유, 학문·예술의 자유와 인격권,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을 침해한 불법 행위”에 대해 국가와 부역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문화예술인이 만여 명이나 된다니 원고 모집에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사람들은 세월호 관련 서명, 야당인사나 진보정당 공개 지지, 세월호 참사나 5.18을 다른 작품 활동, 현직 대통령에 대한 풍자·비판을 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작품 활동 방해, 창작지원금 중단, 지원 사업 폐지 등의 차별을 받으면서 생활고에까지 시달리기도 했다. 정부가 이처럼 자신에 우호적인 세력만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문화예술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검열의 올가미에 빠지게 된다. 게다가 이를 의식하는데서 오는 자괴감은 자유로운 창작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기관의 권한 남용이 우리 문화예술계를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화예술계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하고 작가가 자기검열의 함정에 빠진다는 현실에 가슴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다. 비단 문화예술인 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강제 당한 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권력에 대한 건강한 풍자와 비판이 문화예술로 표현되고 용인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문화융성이란 국정 기조 이면에 이처럼 야만적인 문화예술 억압이 존재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다시는 이 땅에 블랙리스트나 문화예술 검열이란 야만적인 행위가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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