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말로는 부족했던 2016년도 이제 역사의 한 장이 되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모두들 어수선하고 경황없던 중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서 한 해가 오고 갔다. 연말마다 들려오는 미담(美談) 가운데 하나가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 소식이다. 특별히 전주 노송동 주민 센터의 일명 얼굴 없는 천사는, 지난 2000년부터 17년 째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보여주기식 선행을 일삼는 사람들이 허다한 세상에, 한두 번도 아니고 17년 동안을 한결같이 꼭꼭 숨어서 선행을 이어오고 있으니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이렇게 몰래 선행을 한다든지, 평생 안 입고 안 쓰고 모은 돈을 남을 위해 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 쪽에서는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불법적인 방법을 자행하며 스스로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남의 어려움은 안중에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의 위해서라면 남의 것을 빼앗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두 부류의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에서 어제도, 오늘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

전혀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공통점(?)을 찾는다는 이들은 모두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서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라 그 행복의 방향은 여러 갈래로 나타난다. 어떤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기쁨을 향해 있고, 어떤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불쾌감을 주어 다른 사람을 분노케 한다.

이 세상에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는 것처럼, 전적으로 똑같은 성향의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살아온 사회, 환경, 종교나 가족 관계, 가까이 한 사람들, 즐겨 읽은 책, 심지어 섭취한 음식물 등등에 이르기까지 각 개인이 접촉한 그 모든 것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각자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된다. 그 가치관에 따라 좋아하는 이성의 취향도 다르고, 취미나 직업 등도 다르게 된다. 그래서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고, 사람들은 그 많은 직업들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일을 택한다. 사람의 생김새를 가지고 잘잘못을 따질 수 없듯이, 직업 역시 좋고 나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이 40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듯이, 어떤 일을 하든지 그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몇 달 째 뉴스에서는 국정농단과 관련된 사람들의 비리 소식을 다루고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한 때는 잘 나가던 교수, 검사, 정무수석, 장관이었다.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그들은 남다른 어린 시절, 학창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잠 대신 책을 택하고, 영화관 대신 도서관을 택했을 것이다. 차곡차곡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 자신들의 팔목에 수갑을 채워지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남들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노력을 했을 그들은, 어쩌다가 온 국민을 대상으로 분노유발자가 되었을까. 그러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그들의 행복의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이기적이다. 이타주의의 표본처럼 여겨지는 테레사 수녀조차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기 때문에 희생과 봉사의 삶을 기꺼이 택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흔히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양심불량이거나 가치관이 잘못된 사람이다. 김수영(金洙暎, 1921~1968) 시인의 <절망(絶望)>이란 시가 있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拙劣)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도 오고 /구원(救援)은 예기치 않는 순간에 오고 /절망(絶望)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양심이, 가치관이 잘못된 것까지도 받아들이겠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니까. 그런데 결코 반성을 하지 않는 그들은...정말 절망적이다.


김상진 한양대학교 교수, 한국시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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