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기가 막힌 타이밍도 없다. 정말이지 표창원 의원은 그 긴 수렁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청와대 입장으로 보면 여지없는 ‘감사패’ 감이다. 그가 자신을 의원으로 이끌어 준 당에 대해 잘해 보자고 한 일이라도, 혹은 개인적으로 분위기 타고 있는 문재인을 위한 충성심이었다 해도 그는 분명 보수나 청와대의 실력자들이 보기에 ‘은인(恩人)’이자 ‘내부자’(?)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알려진 대로 문제의 그림은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선한 전시회에 걸려있었다. 당황한 보수 아저씨들의 겁 없는 손발에 그야말로 박살이 나기 전까지. 또한 지금의 광장문화에 익숙해 오다 서서히 지쳐가는 보수들에게 시원함을 선물하면서 한편으로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주기 전까지. 특검이 뜨면서 연일 저녁 뉴스에서 매일 바뀌는 넥타이나 코트의 화려한 패션으로 화제가 된 특검보의 소식을 전하던 언론도 이번에는 표 의원에 오버와 무모함을 나무라고 나섰다. 무슨 짓이냐는 얘기다. “ 아! 정말 이 사람이 다된 밥에 재를 뿌리는 거야 뭐야” 진보의 격노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결국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알몸으로 풍자한 그림이 “예술을 빙자한 인격 살인”이란 죄목으로 당 윤리심판원에 회부되기에 이른다. 표 의원은 지난해 총선 직후 다른 의원들의 그것처럼 “정의롭고 깨끗하며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국회의원, 품격 있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 안의 문구중 품격이 문제였다. 그가 그렇게 강조해온 품격은 결코 이런 것이 아닌 탓이다. 누가 보더라도, 품격의 의미를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품격은 이런 것과 거리가 멀다. 척보면 안다. 그림은 텍스트보다 한 눈에 보기에도 본능적이다. 이런 점을 표 의원은 지나쳤다. 그래서 더욱 구분하기 쉽다. 말끝에 그가 말한 표현의 자유도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토록 그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진보의 한계를 스스로 보여준 게 전부다. 더구나 그들이 그렇게 보기 싫어하는 태극기를 휘감은 보수에게 오히려 반전의 기회마저 만들어 줬다.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린 격이다. 보수는 속이 끓어 오르면서도 내심 표의원에게 감사하고 있다. ‘고마운 창원씨’

‘더러운 잠’ 이란 문제의 작품을 내건 작가만 억울하게 됐다. 이번 기회에 자신의 작품이 뜨기만을 고대 했어도 작가의 이름을 오히려 표 의원이 가린 탓이다. 이전에도 박 대통령을 풍자한 예는 많았다. 대뜸 보기에도 고개를 돌릴 그림들이 골목등지에 음성적으로 뿌려졌고 기어코 밝혀진 작가들의 이름은 늘 생경하기만 했다. 그들 역시 ‘표현의 자유’를 그때마다 역설했다. 그래서 적당히 봐 주고 넘어갔다. 사실 이런 사람들을 잡아넣어 콩밥 먹이는 일이 오히려 도와주는 격이다. 작전에 휘말리는 모양새다. 결국 이렇게 스스로 자폭해 꺼져가는 보수의 불씨를 살려준 표 의원은 그야말로 보수에게 단비요, 구세주다. 나는 이즈음에 표 의원에 대한 당내 징계 역시 이런 차원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또한 또 다른 의심은 왜 무슨 이유로 이런 뻔한 얘기들을 표 의원이 전개 해 왔는지다.

자타가 공인하고 의원 이전에 수많은 시청자인 국민들에게 인기 프로그램인 ‘더 프러파일러’ 진행자로 인정받아온 그다. 실화를 바탕으로 프로파일링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응용되고, 사건 해결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드라마틱한 재연을 통해 보여준 그 안에서 그는 의원이 될 수 있는 지명도를 얻었다. 이런 사람이 앞에 전개될 얘기들을 예상하지 못했겠는가. 아니면 확실히 이번 기회에 이재명식 바운드를 조율해 왔는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열 받아 표 의원에게 의원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여성 국회의원들의 주장처럼 표 의원이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학교 전담 경찰관 제도 사태에도 “잘 생긴 남자 경찰관을 여학교에 배치해 문제” 라는 말로 물의를 일으켰고 이외 ‘공직자 65세 정년 도입 주장’ ‘국회의원 휴대폰 번호 무단 공개’ 등 예기치 않은 돌출 행동으로 갈 길먼 민주당의 소매를 잡아당긴 전력이 있다.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자신이 야심차게 영입했음에도 부담으로 돌아온 표 의원에 “작품은 예술가 자유이고 존중돼야 하지만 그 작품이 국회에서 정치인 주최로 전시된 것은 적절치 않다”며 분명한 선을 그은 것도 당연하다.

최근 사회 여러 곳에서 회자되는 갑이 을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에 반작용을 불러일으킨 예를 우리는 수도 없이 봤다. 과거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사례를 역지사지(易地思之)해도 그렇다. 간단히 생각해도 이런 야권의 정치인들이나 그에 붙고 싶어하는 예술인들의 좌충우돌식 행동은 문 전 대표와 민주당에 해악만 끼칠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새누리당이나 보수의 간자(間者)였던가. 지금 박 대통령은 국정 농단 책임으로 탄핵 심판대에 올라 있다. 권력자에서 바닥에 쓰러져 누구나 밟고 지나간다. 그러나 민주당은 표정관리만 해도 떡이 굴러 들어오는 상황이다. 모든 사회 분위기도 좌로 클릭하고 있다. 마침 공무원들도 엎드려 기고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는 안팎으로 더 없는 도전과 곤란으로 처해있다. 그럼에도 우리 자신은 이에 덤벼들 용기는 커녕 전혀 준비조차 되어 있지 못하다. 하물며 밤낮 이런류의 한심한 얘기들에 귀를 기울이고 응답해야 하는지 조차 감이 안 올 정도의 하루하루다.

문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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