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총체적 위기상황이다. 북핵 문제로 인한 안보의 위기가 여전하다. 사드배치, 위안부 소녀상 문제 등으로 인한 주변국과의 외교적 위기도 맞고 있다. 과도한 가계대출 부담, 실업 문제, 내수경기 위축 등 경제마저 위기임에 틀림없다.

 유례없는 국가 리더십 붕괴까지 겹쳐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로 온통 난리다. 국민이 받은 첫 충격은 믿었던 국가 시스템의 고장이었다.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고, 온갖 인사에 개입한 사실이 알려지자 오죽하면 '이게 나라냐'란 자조가 절로 나왔을까.

 선진국이 국민소득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확고한 국가 시스템을 통한 사회 안정은 선진국의 필수조건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특수계급'이 국가권력을 사유화해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는 모습을 국민들은 보았다. 경기침체 속에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평범한 국민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엄동설한 속에서도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온 국민들은 위대했다. 국민들은 국가권력을 사유화 한 대통령을 비롯한 소위 '특수계급'보다 세상의 이치에 밝았다. 좌절과 허탈, 분노에 휩싸여 있었지만 자제했기 때문이다.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의 에너지가 20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서을의 광장에서 촛불로 분출되는 느낌이다.

 촛불민심은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 해체를 넘어 이를 대체할 틀을 요구하고 있다. 헌재 탄핵심판의 시계가 빨라지고, 특검 수사가 박 대통령 대면조사를 앞두는 등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 와중에 안보·외교·경제의 위기보다 더 심각한 위기가 우리 사회 깊숙히 자리잡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바로 분열로 인한 갈등의 위기이다. 하나의 대한민국이 크게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동·서간 지역감정도 여전히 남아있다. 노(老)·소(少)간 세대 갈등, 빈(貧)·부(富) 격차에서 파생된 계층간 갈등, 보수·진보로 나뉘어 끊임없이 다투는 이념 갈등 등 국민의 분열상이 여러 갈래로 얽혀 있다.

 과거 군부(軍部)독재 정권시절 국민들이 요구했던 시대정신은 민주화였다. 헐벗고 굶주렸던 시절의 시대정신은 경제발전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탄핵심판의 시계가 한층 빨라짐에 따라 조기대선이 가시화되고 있다. 여러 위기에 처한 지금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다양할 수 있지만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대연정, 협치 등을 내세우는 대선주자들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인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의 대연정 구상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정치적 레토릭(rhetoric) 이라기보다 훨씬 진정성이 느껴지기에 더욱 그렇다. 대연정 반대 입장인 다른 야권 대선주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으면서도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이런 안지사를 응원하고 나섰다. 원 지사는 '진영만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보고, 벽을 넘어서 연대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보다 진영과 벽을 넘어 비로소 국민과 함께 하려는 안 지사의 큰 시도가 아름답다'고 추켜세웠다. 원 지사는 '이제 대한민국은 함께하지 않으면 더 멀리,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소회도 밝혔다.

 정치교체와 통합의 지도자란 기치를 내걸고 대선판에 도전장을 던졌던 반기문 전 유엔대사의 중도하차는 안타깝다. 이런 기치로 좀 더 활동했으면 조금이라도 국민통합이란 흐름의 물꼬는 트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바른정당 대선후보인 남경필 경기지사도 협치를 강조하면서 연정을 통해 도정을 운영하는 모범을 보이고 있다. 현재 대선주자 지지율 1위인 문재인 후보도 '지역과 계층을 뛰어넘는 첫 통합 대통령이 되고 싶다'며 화합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인간은 한 명 한 명이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한 존재이다. 인간을 내편, 네편으로 갈라 반대편을 배척하는 것은 반인간적이다. 빈부격차, 지역감정, 사회적 불평등, 진영논리 등 분열의 요소들을 해결해야 한다. '함께하지 않으면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원희룡 지사의 소회에는 분명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해법도 담겨 있다고 본다.

 이번 대선에서 통합의 리더십을 갖춘 국가지도자의 등장이 절실한 이유다. '앙시앵 레짐'을 대체할 새로운 틀을 짜는 것과 통합의 국가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 서로 맞닿아 있지 않은가 싶다.

김성훈 북부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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