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保守)층이 안희정에게 끌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의 표현처럼 ‘진지빤스’해서다. ‘다른 길’을 말하는 그의 화법(話法)은 진지하다. 사드(THAAD)는 “정부 결정을 뒤집기 어렵다”고 했다. 이재용 영장 기각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선을 그었다. 대연정(大聯政)은 “선거공학적 접근이 아닌 소신”이라고 받아친다. 그의 묵직한 담론(談論)은 ‘내 마음 갈 곳을 잃은’ 보수심(心)을 움직인다.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단편적인 물증이다. 산산이 깨진 보수 파편이 안희정쪽으로 튀고 있다. 주목해 볼 만한 현상중 하나다. 안희정은 ‘중도(中道)’라는 회색 공룡의 등에 올라탔다. ‘내 마음 나도 모르는’ 보수의 힘을 빌어 ‘마의 10%’ 장벽을 뛰어넘었다. 친박(親朴) 보수는 안희정에게 관심이 없다. 그들은 오로지 친문(親文)만 아니면 된다. 안희정에 대한 경계심은 같은 편의 불안 심리에서 묻어난다. 심상정은 “애어른 같다”고 비꼰다. 이재명은 “(안희정의 대연정은) 청산세력간 이종교배”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안희정의 ‘다른 길’이 신작로인지, 벼룻길인지 따져보자는 것이 아니다. 가야할 길인지, 갈 수 없는 길인지 가려보자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의 말, 안희정의 말, 이재명의 말, 안철수의 말, 유승민의 말, 남경필의 말…. 그들의 말과 그 위에 포개지는 또 다른 말이 만들어 낼 결과는 결국 국민 몫이다. 여기서 굳이 안희정을 들먹인 것은 이제 조금은 ‘진지빤스’해져야 할 때라고 생각해서다. 내 나라 대선판은 요즘 진보와 보수 주자(走者)들이 일으키는 말(言)먼지로 자욱하다. 말로 쌓은 성을 부수고 그 자리에 다시 다른 말로 성을 쌓고…. 깨트리고 쌓는 일은 누워서 떡먹기다. 일자리, 국방, 교육, 재벌에 이르기까지 신(神)의 영역을 넘나든다. 복지 분야는 ‘금 나와라 뚝딱’만 하면 될 것 같은 ‘도깨비성’까지 쌓아 올리고 있다. 이쯤되면 ‘말능주의’라고 해야 할 판이다.

그중에서도 백미(白眉)는 ‘큰 정부’론이다. 보릿고개에 들어선 일자리 유혹은 강렬하다. 당장 선택적 백수(白手) 81만 명에게 ‘늘공(늘상 공무원)’ 또는 ‘어공(어쩌다 공무원)’ 신분증을 줄 수 있다. 수십만 명에게 직업 군복을 입혀줄 수도 있다. 철밥통에 인생을 걸다시피한 청년세대는 열광한다. ‘자신보다 못 살 것 같다’는 근성없는 자식을 둔 부모세대는 안도한다. 삼대(三代)의 공포심을 지렛대 삼아 쌓아올린 철언성(鐵言城)은 이미 대세다. ‘큰 정부’는 좌파의 영역이니 진보 주자들은 그렇다 치다. ‘작은 정부’ 수호신 역할을 해야 할 보수 주자들은 정체성마저 포기한 듯한 모습이다. “세금을 얼마나 더 거둬야 하는지 말해야 한다”는 반반(反反) 어법으로 대항하는 정도다. 안희정처럼 진지하게 ‘다른 말’을 하는 지도자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지리멸렬한 보수 주자들은 포퓰리즘에 기생하는 ‘치사빤스’ 수준조차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재원만 있다면 철밥통이 200만 명쯤 돼도 괜찮다는 것인가? 공무원이 어떤 종(種)인가? 우파정권 아래서도 ‘공무원의 수는 해야 할 업무의 경중이나 그 유무에 관계 없이 일정 비율로 증가한다’는 파킨슨(Cyril N. Parkinson)법칙을 입증해 낸 잡식성 포식류다. 초등학생까지 가슴 쓸어내리게 했던 ‘전안법(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을 보라. 책상머리에서 대충 만들어 낸 엉성한 규제를 대선판에 떠넘기고 발을 뺀 프로중의 프로다. 규제를 자양분(滋養分)삼아 살집을 키웠고, 이제는 근육까지 만들고 있다. 입신양명(立身揚名) 반열에서 ‘사(士)’를 밀어내고 있는 것이 단초(端初)다. 부산시 공무원들은 ‘의사는 5급, 변호사는 6급, 회계사는 7급’으로 몸값을 매겼다. 이런 추세에 500만 공시족(公試族)을 양병(良兵)해서 100만을 모관(募官), 모병(募兵)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나라가 민초의 국가인가, 아니면 관료의 국가인가?

큰 정부는 제4차 산업혁명 물결을 거스르는 탁류(濁流)다. 파괴적 혁신을 가로막을 세력은 권력과 알아서 기는 관료집단 뿐이다. “현재 102만 명인 공무원을 반으로 줄이면 규제도 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다른 길’을 말하는 보수 주자는 나올 것 같지 않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가 은퇴중인 지금이 ‘작고 강한 정부’를 만들 수 있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기회다. 세계은행 상임이사를 지낸 모이제스 나임은 ‘권력의 종말’에서 현대 권력을 이렇게 정의했다. “21세기에는 권력을 얻기는 더 쉬어지고, 발휘하기는 어려워졌으며, 잃기는 매우 쉬워졌다.” 미시권력(micro-power)이 정부와 같은 거시권력(macro-power)을 제재할 수 있는 시대다. 이제야 말로 국민들이 조금은 더 ‘진지빤스’ 해져야 할 때다. 한동훈/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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