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의 왕… 같은 곳에 묻힌 이유는?

조선 제3대 임금인 태종과 왕비 원경왕후가 묻힌 헌릉과 제23대 순조와 순원왕후가 묻힌 인릉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 대모산(大母山, 293m) 아래에 있다. 태종은 조선의 왕들 중에서 가장 강력했던 왕이고 순조는 가장 나약했던 왕이다. 이들이 같은 공간에 묻혀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능역 입구에 들어서면 인릉이 보이고, 그 앞을 지나 돌아가면 헌릉이 나온다. 각기 다른 산줄기에 자리한 두 능은 그들 인물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태종의 헌릉은 기세가 장엄한 반면 순조의 인릉은 약해 보인다.

대모산은 모습이 늙은 어머니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산세는 한남정맥 백운산(566m)에서 갈라져 나온 맥이 바라산(428m)과 국사봉(540m)을 거쳐 청계산(616m)을 세운다. 청계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맥 하나가 경부고속도로 달이내 고개를 건너 인릉산(327m)을 만들고 다시 북쪽으로 이어져 주산인 대모산을 만들었다. 헌인릉을 중심으로 사방의 산들이 겹겹으로 감싸며 보국을 형성하고 있다.

헌인릉 쪽에서 보면 대모산 정상이 일자 모양으로 생겼다. 산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모양이 다르다. 다른 곳에서 보면 이 모양이 아니다. 이곳에서만 그렇게 보인다. 일자 형태를 풍수에서는 거문성(巨文星) 또는 일자문성(一字文星)이라고 한다. 문성이란 글을 잘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산세에서 과거급제자와 정승을 많이 배출한다 하여 정승사라고도 부른다. 만약 용맥이 기세가 있으면 일자문성을 면류관으로 보기도 한다. 면류관은 왕이 즉위식 때 머리에 쓰는 모자다. 제왕이 나거나 묻힐 자리임을 암시한다.

일자문성 바로 아래에는 둥글게 생긴 봉우리가 하나있다. 헌릉과 인릉의 현무봉이다. 그 모습이 장막 아래에 있는 귀인과 같다. 현무봉에서는 두 갈래로 용(산맥, 산줄기)이 갈라져 내려간다. 서쪽 용 끝자락에는 인릉이 있고, 동쪽 용 끝자락에는 헌릉이 있다. 두 용의 기세를 살피면 차이가 난다. 헌릉 쪽은 거대한 용이 몸을 꿈틀거리며 내려오는 모습이다. 반면 인릉 쪽은 용은 거대하나 변화가 없다. 풍수에서는 산맥의 변화가 활발하면 생왕룡, 미약하면 병약룡, 변화가 없으면 사절룡으로 구분한다. 헌릉의 맥은 생왕룡이라면 인릉은 약룡에 해당된다 하겠다.

두 용 사이에는 주종 관계가 형성된다. 주가 되는 능선을 정룡(正龍), 종이 되는 능선을 방룡(傍龍)이라 한다. 이를 구분하는 방법은 어느 쪽이 보호를 받는지를 보면 된다. 보호를 받는 쪽은 정룡이고 보호를 하는 쪽은 방룡이다. 구분이 어려우면 능선 끝자락이 어느 쪽으로 돌았는지를 본다. 돌아 준 쪽이 방룡이다. 헌릉은 능선 끝이 앞을 바로 보고 있다. 반면에 인릉은 능선 끝자락이 헌릉 쪽을 향해 돌았다. 혈은 정룡에서 맺는 것이 원칙이므로 헌릉이 정혈이 된다 하겠다.

왕릉이 자리한 땅을 혈장(穴場)이라고 한다. 혈장은 입수도두, 선익, 순전, 혈토의 4요건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사람의 얼굴과 비슷하다. 입수도두는 능 뒤의 볼록한 부분으로 사람의 이마에 비유된다. 용을 따라 전달된 생기를 축적해놓고 혈로 조금씩 보내는 역할을 한다. 입수도두가 크고 단단하면 많은 기가 모여 있다는 것을 뜻한다. 헌릉의 것이 인릉 것에 비해 훨씬 크고 단단하다. 선익은 입수도두에서 혈 양쪽으로 뻗은 작은 능선으로 사람에 비유하면 광대뼈에 해당한다. 생기가 옆으로 새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좌우 균형을 이루어야 좋다. 헌릉의 선익은 안정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반면 인릉은 좌측이 훨씬 높고 강하여 균형을 잃었다.

순전은 입수도두에서 양쪽으로 갈라졌던 선익 끝이 다시 능 앞에서 합쳐지는 부분이다. 사람에 비유하면 턱에 비유된다. 브이라인 턱처럼 좁고 단단해야 좋다. 그런데 인릉은 좌측 선익이 헌릉을 향해 달아났기 때문에 앞이 넓다. 순전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순전이 없으면 기가 앞으로 다 새나가기 때문에 혈을 맺을 수 없다. 혈토는 혈장 가운데 땅속에서 나오는 흙이다. 생기가 모인 만큼 순하고 밝아야 하며, 기가 모인만큼 단단해야 한다. 이런 흙을 비석비토라 한다.

풍수 답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묘를 보면 그 사람의 생전 성향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헌릉은 강력한 왕권으로 많은 치적을 남겼던 태종의 성향처럼 기가 센 곳이다. 그러나 인릉은 어린나이로 등극하여 대왕대비의 수렴청정과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불러왔던 순조처럼 나약하다. 세상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답사지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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