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연재를 시작하며-문명의 전환 관점에서 바라 본 경기 천년

2018 경기천년, 경기문화의 과거, 현재, 미래


중부일보가 기획하는 ‘2018 경기천년’ 시리즈의 3년차 연재를 시작한다. 이 시리즈는 2015년과 2016년 2년 동안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를 80회에 걸쳐 다뤘다. 올해에는 조선후기부터 21세기 현재시기, 그리고 새천년 경기 미래의 전망까지 40회에 걸쳐 여러 학자들이 참여해 연재할 계획이다.


▲ 사진=연합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에게 참패하다

2016년 봄, 세계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둔다는 한국의 이세돌 9단과 구글 딥 마인드의 인공지능인 알파고와의 세기의 바둑 대결이 서울에서 펼쳐졌다. 대국을 앞두고 이세돌 9단은 “알파고의 인공 지능이 놀라울 정도로 강하며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들었지만 나는 최소한 이번 대국에서는 이길 것”이라고 자신했다. 전문가들도 이세돌 기사가 이길 것이라는 희망이 곁들인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결과는 이세돌 9단이 4번지고 겨우 1번 이겼다. 이세돌 9단이 1번 이긴 것도 알파고가 일부러 져줬다는 뒷말과 함께 인간대표인 한국 바둑의 자존심인 이세돌의 뼈아픈 완패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한국인들은 공중파로 생중계된 대국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인공지능시대는 이미 시작됐는데 사람들은 방송으로 생중계된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하고서야 우리 사회가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산업 혁명시대에 들어섰고 인류가 새로운 문명의 전환기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했다.

2018년은 ‘경기’가 한국 역사에 등장한지 천년이 되는 해이며, 경기 새천년이 시작되는 해이다, 공교롭게도 경기 새천년은 인류가 맞이하는 새로운 문명의 전환과 맞물려 있기에 경기 새천년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문명의 전환’이다.



▲ 가자와지볍시
문명 전환의 중요성

인류가 맞이한 첫 번째 문명의 전환은 신석기시대의 농업혁명이었다. 씨를 뿌리고 가꿔 식량을 확보하는 이 단순한 듯 한 행위가 인류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인류가 세상에 나타난 이후 보낸 대부분의 시간은 구석기시대였고 이 시기 인류는 채집을 통해 식량을 해결했기에 이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농사를 시작하면서 인류는 안정적으로 식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됐고 인구가 늘어났다. 정착 생활을 하면서 도시와 국가가 발생했으며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문명사회를 이뤄나갔다. 구석기인들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변화가 신석기시대 농업 혁명에 의해서 일어났다. 고양시 일산의 가와지볍씨 유적은 한반도 벼농사의 기원이 경기지역의 신석기시대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두 번째 전환은 18세기 산업혁명으로 비롯됐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됐으며 인류는 산업혁명이 가져다 준 대량 생산체제로 이전 농업시대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다. 18세기 영국에서 증기기관이 발명됐을 때 그 누구도 불과 1세기 조금 지나 유럽이 전 세계를 식민지로 지배하고, 세계를 단일 문명권으로 묶어 지금과 같은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러 문화권으로 나눠 생활하던 인류는 산업혁명을 먼저 경험한 유럽에 의해 하나의 세계로 통합되면서 심각한 폭력을 경험하게 된다. 소수의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나머지 대부분의 국가를 침략하고 지배하면서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식민지지배를 당하는 국가와 개인의 자주성도 훼손됐다.

이 같은 문명 전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문명 전환 이전과 이후 세계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다르며 전환 이전에는 전환 이후 세계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둘째 문명 전환은 그 과정에 폭력이 수반된다. 셋째 문명 전환의 과정은 긴 시간 동안 이뤄진다. 그 과정에서 전환을 주도하거나 참여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로 나눠지는데 어느 국가에 속하느냐에 따라 국가 구성원의 안녕과 생활 전반에 현격한 차이가 초래됐다. 넷째 문명의 전환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18세기 문명의 전환에 수용적 입장을 취한 경기지역 학자

인류의 1번째 문명 전환과 2번째 문명 전환 사이 한국 역사는 또 하나의 문명 전환을 경험한다. 북방계 알타이 문명권의 고조선이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문명권으로 편입된 것이다. 고조선이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문화권에 편입되면서 폭력이 발생했다. 한 나라 무제에 의해 고조선이 멸망했고 한사군이 설치된 것이다. 이후 고구려가 한사군을 축출했고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로 한국 역사가 이어졌다.

조선사회는 성리학사회이다. 중국에서 들어 온 성리학은 파주에 본가가 있는 율곡 이이에 의해 조선 성리학으로 뿌리를 내렸고 토착화됐다. 율곡을 둘러싼 학자들과 그 뒤를 이은 학자들이 기호학파를 형성했고 이들이 영남학파와 함께 조선사회를 유교 지식국가로 만들었다. 성리학은 민본주의를 이상으로 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실학이 발생했는데 그 중심에도 경기지역의 학인들이 있었다.

18세기 유럽이 산업혁명을 선도하면서 세계사의 흐름이 크게 바꼈다. 18세기 이전 유럽은 중국과 인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도 월등한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혁명이라는 문명의 전환을 유럽이 주도하면서 유럽은 문명은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 시기 서양의 과학문명이 조선에 들어왔을 때 조선의 대응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성호 이익을 포함한 경기 지역의 일부 선각적인 실학자들은 서양 문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수용적인 태도를 취했다. 한발 더 나아간 남인 계통의 이벽, 이승훈, 정약전, 권철신과 같은 학자들은 18세기에 경기도 천진암과 주어사에 모여 서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다가 천주교를 신앙으로까지 받아들였다. 세계천주교회사에 드물게 서양 선교사의 선교 활동없이 자생적으로 천주교 신자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서양 문명에 대해 개방적인 입장을 취한 조선의 지식인은 소수였다.

조선 사회 대부분의 유학자들은 서양 문명에 대해 배타적이었다. 조선 사회는 천주교를 박해했고 서양 과학마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 유학자들은 폐쇄적이었으며 다른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리학이 조선사회를 유교 지식국가로 만들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조선사회를 매우 경직된 사회로 만들었다. 18세기 이후 세계사적인 문명의 전환기에 조선사회는 이렇게 새로운 문명과 벽을 쌓아 나갔다.



문명의 전환에 대한 대응의 차이가 초래한 결과

1876년 조선사회의 개항은 1910년 일제 식민지로 귀결됐다.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영국과 미국 등 열강의 동의가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렇다고 개항 이후 역사를 식민지화의 과정으로만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개항 이후 근대국민국가 형성의 길도 열려 있었다. 개항 이후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노력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1876년 이후 1910년까지 주어진 35년의 시간은 조선이 공업을 기반으로 근대국민국가를 만들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18세기에 서양 과학기술을 수용하고 개항이 좀 더 이른 시기에 이뤄졌다면 19세기 한국 역사는 다른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문명의 전환기에 문명에 대한 대응의 차이가 이같이 엄청나게 결과를 초래했다.

1910년 이후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선의 국민들은 치열한 독립운동을 전개했고 그 어느 지역보다, 경기도의 3·1운동은 더욱 격렬하게 펼쳐졌다. 1920년대 이후 학생·노동·농민·신간회 운동과 의열 투쟁 활동은 일본에 큰 타격을 줬다. 1945년 광복은 연합국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투쟁한 결과이다.

1945년 광복과 동시에 남북은 분단됐고 경기도는 분단의 현장이 됐다. 특히 경기북부지역은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경제성장 과정에서도 소외됐다. 군사보호구역,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설정 등으로 경기북부 지역민들은 일상생활에까지 많은 제약을 받았다.

분단 이후 남북은 다른 방식으로 독자적인 문명의 전환을 추진해 나갔다. 남한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개방체제를 선택했고 북한은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고 자력갱생체제를 선택했다. 1960년대까지 북한은 남한보다 더 잘 먹고 잘 살아 더 나은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남과 북은 뚜렷한 격차를 드러냈다. 남한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한데 반해 1980년대 이후 북한은 식량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빈곤한 국가로 전락했다. 다른 선택이 다른 결과를 가져온 곳이다. 한편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경기도는 경제 성장 엔진 역할을 했고, 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산업 중심기지가 됐다.



경기 새천년의 과제

경기지역사회는 문명의 전환기에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8세기 새로운 문명이 나타났을 때 경기지역의 학자들은 수용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21세기에는 자율주행자동차 시범도시인 판교제로시티를 어느 자치단체보다 먼저 조성하는 등 4차 산업혁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새천년 경기지역사회의 과제는 한국 사회가 문명 전환 주도 국가가 될 수 있도록 함께 하는 것이고 동시에 문명 전환 과정에서 다시는 소외되는 집단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돼야 할 것이다.

강진갑 경기대 교수, 경기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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