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은 여야 대선 주자들에게도 분명 돌발 현안이다. 그간 잘 나가고 있던 야권은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이라지만 자칫 저절로 불어올 수도 있는 북풍으로 인한 우 클릭에 고민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현안을 그냥 즐기기도 어렵게 된 여권 역시 고민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번 사태가 대선 판도에 어느 정도의 영향이 불가피해 보이는지도 모른다. 물론 당장 지금의 우리 현안은 흩어진 정치다. 그래서 특검과 탄핵, 화면마다 대권 일색이다. 어차피 될 사람이 될 것이고 떨어진다 한들 해를 기다려 또 나오면 그만인 정치다. 물론 피곤하기로 치면 당사자나 건더기, 혹은 국물까지 기대하며 좇는 추종자들보다 이를 할 수없이 쳐다봐야 하는 국민이 우선이다. 이 모두 영리한 사람은 많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드물어 생기는 일이다. 정치의 속성상 쪼개진 이념으로 만들어진 보수나 진보 공히 마찬가지다.

특히 보수에게는 지지할 사람도 과거처럼 묵직한 후보도 없다. 그렇다고 진보에게 그냥 넘기자니 부아가 치밀고 깊은 상실감마저 찾아온다. 늦게 불어온 태극기 바람에 희망을 걸어도 문재인 대세론을 꺾기는 부족해 보인다. 이러다 보니 아예 대선 투표율마저 걱정되고 있다. 투표율은 보수의 숨겨진 무기다. 지금의 정부가 국민을 너무 힘들게 한 죄 크지만 투표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말에 보수주의자들 고민은 크기만 하다.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사람은 보여도 믿음직한 구석이 없어 막막하기만 하다는 사람이 늘고 있는 이유다. 왕년의 보수는 그래도 진보의 대표 선수들처럼 함께 든든히 버텨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없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에서 출사표를 던진 선수들의 지지율은 죄다 합해도 한 자릿수다. 배신자의 낙인이 찍혀 경제전문가를 자칭해 살려본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흔들어대도,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는 수도 이전이라는 엄청난 선언을 해도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진보는 또 어떠한가. 사실 지금 상태로라면 표정관리만 잘 해도 당선 가능성이 엿보일 진보진영이다. 그러나 이들 대표선수들은 여전히 싸가지 없고 불안한 말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비껴가고 있다. 진보의 특기인 자체 분열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번에도 정권을 놓치면 한강에 둥둥 떠다닐 연분홍 혓바닥만이 눈에 선하다. 다행히 이 모든 정황을 일찍 알아챈 안희정 지사만큼은 ‘아버님·어머님’들의 걱정을 덜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약은 사람’이라 부르기 전에 지혜롭다. 간단한 방법을 아주 어렵게 해결하려는 진보의 수를 쉽고 단순하게 해결할 줄 아는 정치인이다. 그에게 과거 여러 죄가 있어 옥죄는 순간이 있다 해도 그는 젊어서 유일하게 부모님 세대와 젊은 세대가 손잡고 투표장으로 향하게 만드는 재주를 이미 가졌다. 여전한 보수 성향 유권자와 호남의 표를 아우르는 사람이 최후에 대통령 당선증을 받을 것이라는 비결을 가슴에 묻어온 탓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일자리가 없다 난리를 치면서도 정의가 우선이라는 순위에 밀려 중요한 것들이 뒤로 밀리면서다. 따지고 보면 최순실 사건이 정치권의 무능과 후진성을 보여준 것임에도 그 책임을 기업에만 떠넘기려 하고 있다. 국회를 해산하든가 의원 모두에게 그간의 진술서나 반성문을 받아야 함에도 얘기는 엉뚱한 곳으로 튀고 있다. 정의를 무시하자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순서껏 해결해나가자는 것이다. 법리보다 반기업 정서를 앞세운 촛불 여론의 압박에 우리 사회가 휘둘리고 있을 때 일본은 이미 트럼프와 정리된 축배를 들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안보 문제다. 그런데 왜 저들이 태평양 건너 아득한 곳에서 이 걱정인가. 물론 사거리 또한 길어지고 어느 방향에서도 자신들을 위협할 수 있게 된 탓도 없지는 않겠다. 이럴 때 우리 정부는 그저 미국이 우리와 안보를 공고히 할 것이라며 그들의 무시한 무기들만 소개하고 있다. 엄청난 기술력과 입만 열면 세계최고, 아시아 최고를 외치고 있지만 우리는 마치 문래동 철공소 골목길에서 대충 만들었을법한 무지막지한 미사일에 매일 낮밤을 가위에 눌리고 있다. 미사일 이름이 웃긴다 하여 파괴력이 우스운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 이유다.

싸움에 이길 자신이 없으면 그 싸움은 하나 마나다. 엎드려 살던가, 떳떳하게 숨 쉬든가 결단만 남았다. 이기려는 의지 하나 없이 위기 때마다 미국 항공모함이 떠서 이리로 오고 있다든지 미국 전폭기가 평양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로 국민들을 달래려 하는가. 우리 군대는 어디 있고 무엇 하는가. 정치야 이미 벛꽃 선거에 썩어있다 해도 각자 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트럼프가 단호한 어조로 북한의 압박에 “북한을 아주 강력하게 다룰 것”이라고 말한 것과 그를 만나 골프치고 만찬까지 마친 아베 총리가 “미국의 대북 정책이 거칠어질 것이 명확하다”고 전한 말만 앉아서 들어야 하는 우리는 분명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문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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