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경 만월대와 닮은 '보국 지형' 골라 천도

우리나라 섬 중에서 강화도는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예성강(187.4km), 임진강(224km), 한강(514km) 어귀에 있어 주요 도시의 관문 역할을 한다. 예성강을 따라가면 황해도 평산·곡산을 갈수 있고, 임진강을 따라가면 개성, 한강을 따라가면 서울로 갈 수 있다. 조선시대 충청·전라·영남지방에서 북상해 온 세곡선이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화해협을 통과하여 한강으로 진입해야 했다. 강화해협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유속이 빨라 썰물 때는 항해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해안에 배를 대고 물때를 기다려야 했다. 밀물 때가 되면 조수가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항해를 하면 힘들이지 않고 한양으로 갈 수 있었다.



이 같은 지리적 특성으로 강화는 조선시대 해상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했다. 자연히 사람과 물자가 몰려들었다. 옛 노인들은 개도 엽전을 물고 다녔다고 말 할 정도로 번성했다.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좁은 해협을 염하(鹽河)라고 부른다. 물살이 매우 빨라 배로 이곳을 건너기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강화도가 천혜의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다. 고려는 몽고군을 막기 위해 염하를 따라 성을 쌓았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간척이 이루어져 넓은 농지가 만들어졌다. 현재 강화 초입의 평평한 논들은 그때 만들어진 것들이다.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선사시대 고인돌부터 현재까지 우리 민족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항몽 때인 고종19년(1232)부터 원종11년(1270)까지 39년 동안 고려의 수도였다. 고려가 강화로 천도한 이유는 유목민족인 몽고군이 수전에 약한 점, 개경에서 멀지 않다는 점, 섬이 넓고 기후가 온난하여 곡식이 잘 된다는 점, 서해 수로를 활용하면 지방과의 연결이 가능하다는 점 등이 고려되었다. 현재는 고려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몽고와 개경환도 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궁궐과 성곽을 모두 허무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고려는 몽고의 내정간섭을 최소화하는 실리를 얻을 수 있었다.

강화천도를 주도한 세력은 왕이 아니다. 당시 무인정권의 실권자인 최우였다. 개경은 성이 견고하니 끝까지 싸우자는 세력도 있었다. 그러나 최우는 이들을 죽이고 왕을 압박하여 천도를 강행하였다. 그는 장마 비가 내려 진흙에 발목이 빠지는 가운데서도 녹봉거 100대를 동원하여 자기 집안의 재물을 모두 강화로 옮겼다. 이 때문에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최씨정권은 자신들의 신변안전만 생각했다. 본토 백성들이 몽고군에게 살육을 당하는데도 최우 군대가 강화 밖으로 나가 싸운 적은 없었다.



최우는 천도에 앞서 군대를 보내 궁궐을 지었다. 왕과 귀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만월대와 비슷한 지형을 택했다. 궁지 뒷산도 송악산이라 이름 짓고 궁궐 이름도 개경 것을 따랐다. 성곽 또한 개경과 같은 구조로 쌓았다. 궁성(내성), 황성(중성), 나성(외성)을 쌓아 3중으로 방어했다. 궁성은 지금의 강화성으로 길이는 약 1.2km이다. 내성을 보호하기 위해 약9km에 이르는 중성을 쌓았다. 외성은 중성을 수비하기 위해서 염하 해안선을 따라 쌓았는데 그 길이가 약23km에 이른다.

강화궁지의 산세는 한남정맥에서 비롯된다. 속리산에서 김포 문수산(376m)까지 달려온 한남정맥은 강화해협을 건너 당산(74.2m)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동문을 거쳐 고려궁지 뒷산인 송악산(126m)을 만들었다. 여기서 서쪽으로 나간 산맥이 고려산(436.3m)을 세웠다. 고려산은 동서남북으로 산맥을 분지한다. 동쪽으로 뻗은 맥은 남산(222.2m)을 만드는데 고려궁지의 안산이 된다. 남쪽으로 뻗은 맥은 혈구산(466m), 퇴모산(339m), 진강산(443m)으로 이어져 마니산(469m)에서 끝난다. 마니산이 기가 센 것은 산맥의 끝에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고조선의 단군(왕)들은 참성단을 세우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고려궁지의 주산·현무는 송악산이다. 좌청룡은 동문 쪽으로 이어진 능선이고, 우백호는 서문 쪽으로 이어진 능선이다. 주작은 남산으로 현무인 송악산보다 훨씬 높다. 앞산이 높으면 혈은 높은 곳에 위치한다고 하였다. 고려궁지가 주변 지세보다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다. 사방으로 산들이 감싸준 안쪽을 보국이라고 한다. 보국이 크기에 따라 도읍지, 소읍지, 마을, 주택, 음택지가 된다. 강화는 비록 섬이지만 상당한 크기의 보국을 갖추고 있다. 보국 안에는 강화읍이 자리하고 있어 아늑하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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