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태영 수원시장이 2017년을 ‘시민의 정부’ 원년으로 선포했다. 시민들을 단순히 정책의 수혜 대상이 아니라 시정의 주인으로 만드는 시정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시민이 주인이 되는 시정을 하겠다는 취지 자체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부디 뜻한 바대로 시정 운영을 잘 해서 시민이 시정의 주인이 되는 수원시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몇가지 의구심이 든다. 우선, ‘시민의 정부’라는 표현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가 통치하는 정부는 당연히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정부’인 것이다. 달라질 것도 없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것을 요란하게 원년 선포까지 하면서 강조하는 것이 어딘가 어색하다. 한편으로는, 그렇다면 지난 7년동안 염태영 수원시장이 이끌어 왔던 수원시는 ‘시민의 정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지난 7년간 염태영 수원시장이 이끌어 온 수원시가 ‘시민의 정부’로써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기 반성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면, 거창하게 원년 선포를 하기 전에 지난 7년간의 통치 행위에 대한 책임있는 설명과 사과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 7년동안 염태영 시장과 수원시는 과연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일해온 시장과 정부라는 걸까? 새해 벽두부터 난데없이 들려온 ‘시민의 정부’ 원년 선포 소식은, 그것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갖기 이전에 의구심부터 갖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건, 염태영 수원시장이 ‘시민의 정부’를 만들기 위해 내놓은 생각들이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시민들의 시정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가진 듯 하다. 그러기 위해, 그동안 추진해 온 각종 ‘거버넌스’ 기구들을 역할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시민이 직접 시정에 참여해서 직접 결정하고 직접 책임도 지는, 이른바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을 조직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모든 시민들에게 강제력과 구속력을 가지는 결정을 내리는 역할은 ‘의회’의 몫이다. 이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

현대 사회에서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통해 공적 의사결정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사람들은 ‘직접 민주주의’의를 말하면서 흔히 고대 그리스 아네테의 민주주의를 말하곤 하는데, 인구가 3만명도 되지 않던 소도시에서 경제 활동과 가사노동, 육아 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남성들로만 운영되었던 아테네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복고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와 현대의 민주주의는 분명히 다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주권자인 시민들이 권력을 위임한 기구는 의회다. 따라서 의회는 시민들의 요구와 필요, 목소리와 의지를 조직하고 그에 대한 공적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한다. 시민들의 정치 참여라는 것은 단순히 많은 수의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권력을 위임한 의회에서 공적 논의가 진행될 때 최대한 많은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와 목소리가 배제되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도모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는 의회와 시정의 역할과 내용을 좀 더 풍부하게 채워주는 보조적인 수단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자체가 시민들의 정치 참여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염태영 수원시장의 구상 안에 이와 관련한 고민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런저런 기구나 위원회 더 만들고 예산 더 투입하면 시민들의 참여가 더 활성화 되지 않겠는가 하는 정도의 생각인 듯 하다. 이런 방식으로는 결코 더 많은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없다.

아무리 의회가 불신의 대상이고 지탄의 대상이라 하더라도, 의회의 역할을 우회하면서 시민들의 정치참여, 더 나은 지방자치, 더 좋은 민주주의를 말할 수는 없다. 진정한 ‘시민의 정부’를 만들고자 한다면, 시정과 의회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 먼저 고민하기 바란다. 의회를 통해서 형성된 시민들의 일반의지를 어떻게 시정에서 잘 실천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 바란다. 그것이 거버넌스 기구 수십 개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

유병욱 수원경실련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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