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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의 '장미'

최은주 2017년 02월 17일 금요일
인도의 시성(詩聖)으로 불리우는 타고르가 말년에 화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60대 중반에 시작된 타고르의 그림 그리기는 80세로 운명을 달리할 때까지 지속되었고 약 2천5백점의 작품이 남아있다. 그의 그림그리기는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다. 어느 날 타고르는 글쓰기를 하다가, 지우거나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 단어와 문장에 선을 그었는데, 문득 그 선을 이용해서 낙서를 해보았던 것이다. 이내 낙서들은 그림으로 완성되었고 1930년 5월에는 파리에서 전시를 하기에 이르렀으며 이후 6개월에 걸쳐 런던, 버밍엄, 베를린, 드레스덴, 뮌헨, 코펜하겐, 모스크바, 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로 순회되었다. 타고르는 그림 그리는 일이 시나 희곡을 쓰는 일보다 훨씬 창의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모든 시는 언어와 함께 죽어버린다. 그러나 자연세계에서는 그런 식으로 훼방을 놓는 것이 없다. 크리슈나주라 나무는 어제 꽃을 피웠듯 오늘도 꽃을 피우고 있으며 내일도 꽃을 피울 것이다.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은 언어에 기인한다. 어떤 면에서 시보다 회화가 훨씬 오래 남는다. 눈으로 느끼는 것과 언어로 이해하는 것의 차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라는 말로 그림 그리는 일의 자유로움, 즉발적 표현력이 주는 충족감, 그림 그리려는 대상과의 일체감 등을 이야기 하고 싶어 했다.

▲ 타고르. ‘장미’(부분). 1951년. 종이 위에 채색잉크, 1930~31
여기 소개하는 <장미>는 1930~31년 사이. 그러니까 그의 나이 70세경에 그려진 꽃그림이다. 그림은 아마튜어 작가의 솜씨처럼 소박하다. 한껏 피었다가 시들어버린 장미의 모습을 시인은 과장됨 없이 그의 눈에 비친 그대로 그렸다. 갈색을 드리운 줄기와 잎사귀는 바싹 말라 있고 힘겹게 머리를 들고 있는 장미 송이들은 찬란히 꽃피웠던 한 때를 회상하는 듯 빛깔의 흔적만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노시인의 손끝에서 그려진 이 작은 그림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교감, 우주의 섭리, 이를 노래하는 인간 존재와 영혼의 위대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1928년 타고르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선들이 건 마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만일 어떤 걱정거리도 없는 자유로운 존재하면, 나는 파드마 강가에 살면서 그림만 그리고 거두어 오로지 그림만을 시간의 황금 배에 가득 실어 보낼 것이다.” 과도한 해석이나 지나친 현학적 수사에서 벗어나 예술표현의 동기와 순수성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타고르 그림의 정신성은 후대의 인도 예술가들에게 면면히 전해지고 있다.

최은주 경기도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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