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내 공장 신·증설 규제에 KCC 등 기업들 투자·확장 포기 강원·충청 등 이탈현상 잇따라

▲ 여주시는 30년이 지난 아파트(사진 좌)가 규제에 묶여 재건축 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강원도 원주시(사진 우)는 몰려드는 사람들을 위해 새 아파트가 속속들이 들어서고 있다. (드론촬영) 노민규기자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는 수도권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각종 개발에 엄청난 제약을 받고 있다.

정부는 수도권을 규제하면 지방이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지만, 여주와 양평 등 수도권 외곽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30여년째 고통받고 있다.

▶ ㈜KCC 여주공장, 규제 때문에 경쟁력 잃고 있다 =여주시의 대표 기업 중 하나는 유리를 생산하는 ㈜KCC다.

㈜KCC의 여주 공장은 제1차 수도권정비계획이 수립되기 직전인 1983년 3월 승인이 났다. 때문에 다른 중소기업과 달리 37만1천962㎡에 다다르는 부지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수도권정비계획이 수립된 이후다.

㈜KCC 여주공장 관계자는 “여주공장은 더 이상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확장 의지 자체를 접은 상태”라고 말했다.

수도권정비계획이 제한하고 있는 연면적 6만㎡는 이미 넘어선지 오랜데다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이하 산진법)상 수도권 내 500㎡ 이상 공장의 신·증설이 불가능한 상태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KCC는 지난 2001년 당시 자회사인 KAC를 여주에서 충남 전의 산업단지로 이전시켰다. 현재 전의공장은 본 공장인 여주공장보다 1.5배의 크기로 불어났다.

이 과정에서 KCC는 수백억 원의 자금을 투입해 공업용수 공급시설 및 전력시설 등 기반시설을 전의공장에 마련했다.

결국 이중투자로 KCC는 막대한 손해를 본 것이다.

현재 여주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근로자는 900여명. 수도권정비계획법 규제만 없었다면 여주에 자회사인 KAC가 건립됐을 것이고, 직원도 2천500여명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 KCC관계자들의 설명이다.

㈜KCC 관계자는 “법적 허가만 있으면 여주에 있는 골프장도 공장으로 전환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 지붕 하나 짓는데도 ‘제재’…품질에 영향=수도권정비계획법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대기업 뿐 아니다. 여주에 위치한 중소기업 가운데 “여주에 자리 잡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며 한탄하는 중소기업 대표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콘크리트 말뚝을 제조하고 있는 유정산업의 서보철(50)이사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33년 전(정확한 확인 필요) 유정산업은 여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 공장 개설을 추천받았다.

하지만, 여주에서 근무하고 있던 친분이 두터웠던 공무원이 “여주에 공장을 지어 지역발전에 이바지 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여주로 유턴했다. 그 당시 선택은 결국 유정산업에 독이 되고 말았다.

콘크리트 말뚝 제조를 위해 자갈과 모래 등 원자재를 적치할 곳이 부족해 일부 부지에 지붕을 건설하려 하자 여주시는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에 저촉된다면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결국 서 대표는 콘크리트 제조의 가장 중요한 원자재 질을 포기해야만 하는 지경에 놓이게 됐다. 콘크리트의 경우 비바람과 풍화의 질이 떨어질 경우 KC인증을 받는데 마이너스 요소로 꼽힌다.

서 이사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업체 간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면서 “일부 거래처에서는 원자재의 적치 방식에 불만을 토로한 곳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행정기관에서 적극적으로 밀어 붙이지 않는 이상 여주는 더 이상 발전 가능성이 없는 도시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일자리 줄어들자 충청·강원으로 떠나는 사람들=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피해도 입지만, 규제로 인해 가장 고통 받고 있는 것은 결국 여주시민이다. 업체들의 확장 제한은 인구수 정체라는 악재를 불러왔고 인구수 정체는 결국 발전 저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여주시에는 수도권정비계획법상이 아닌 자체제한이 생겨났다. 수도권정비계획법 내에는 제한이 없지만 “어차피 허가가 나지 않거나 발전이 불가능하니 여주시에는 사업을 하지 말자”라는 기피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시민생활은 갈수록 엉망이 되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공장이 여주에서 떠나거나 투자를 중단하다보니 일자리는 줄어들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쫒아 인근 도시로 자리를 옮겼다.

구혜자(65·여·강원도 원주)씨는 “50년 가까이 살던 여주를 지난 2001년 떠났다. KCC를 다니던 남편이 KAC가 충남으로 내려갈 당시 발령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며 “이후 원주에 있는 회사에 재취업해 원주로 이사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구씨는 또 “당시 KAC가 충남으로 내려갈 때 많은 사람이 퇴직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현상(26)씨는 “여주시에는 그 흔한 CGV 극장도 없다”며 “들어온다는 소문만 파다할 뿐 기약이 없다. 그나마 곧 여주를 벗어날 예정이라서 참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수도권하면 수원이나 안양, 성남 등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면서 “촌동네 ‘여주’를 무슨 수도권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 20여년간 멈춘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여주시청 공무원들도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다.

매년 기반시설 확충 및 주거시설을 늘려달라는 민원을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지만, 국토부 심의에서는 번번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여주시는 최근 5년 동안 택지조성이 된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최근 2개의 업체가 심의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마저도 통과가 될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주시의 여론은 수도권정비계획법과 관련한 어떤 정책을 정부에서 발표해도 “어차피 안된다”라는 자포자기 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여주시청은 인구수를 늘리기위한 발버둥을 치고 있다. 최근에는 여주시청내 공무원이나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여주시에 주민등록을 하면 지원금을 주는 등 자그마한 꼼수를 썼지만 이마저도 금방 제재 당했다.

여주시 관계자는 “여주시민들은 30년 전 11만이 거주하는 도시에서 한 치도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살고 있다”면서 “수도권정비계획법이 폐지되지 않는 한 여주시는 갈수록 죽은 도시로 변모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규철·백창현기자/bch@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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