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맥과 혈 갖췄지만 2% 아쉬운 명당

철종 외가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냉정리 246번지에 있다. 사도세자의 증손인 철종이 강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할아버지 은언군 때부터다. 은언군의 장남 상계군이 홍국영의 모반죄로 몰려 유폐 당한 후 음독자살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 일가족 모두가 강화로 유배되었다. 여기서 부인 송씨와 며느리 신씨는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이로 인해 신유박해 때 은언군은 부인·며느리와 함께 사약을 받고 사사되었다.

강화에는 은언군의 차남인 전계군만 홀로 남게 되었다. 그에게는 부인 최씨와 염씨·이씨 2명의 첩이 있었다. 철종의 어머니 용담염씨(龍潭廉氏)는 강화 출신이다. 전계군은 순조의 특명으로 유배에서 방면되어 도성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이때 철종(1831~1863)이 태어났는데 초명은 원범이었다. 철종이 11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민지용에 의해 이복형 원경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사건이 일어났다. 이 바람에 원경은 사사되고 이씨 소생의 형 경응과 함께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원범의 나이 14살 때였다.

이처럼 철종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강화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어머니 염씨(1793~1863)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천애고아도 아니었다. 또 나무나 하는 무지렁이도 아니었다. 무식한 강화도령으로 알려진 것은 당시 권력자들이 철종의 미천한 신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철종이 강화에 산 기간은 불과 5년이다. 지금의 강화읍 관청리 소재 용흥궁은 아버지 전계대원군이 유배 당시 살았던 곳이다. 그는 자주 냉정리에 있는 외가에 들렸다. 외가는 매헌서당(梅軒書堂) 현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서당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외삼촌 염보길에게서 글도 배웠을 것이다. 또 강화집과 외가 중간에 있는 찬우물 가에서 양순이(봉이)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제24대 왕인 헌종이 23세의 젊은 나이로 후사 없이 죽었다. 그러자 후대 왕을 누구로 할 것인가를 놓고 안동김씨와 풍양조씨 집안 간에 각축이 벌어졌다. 풍양조씨는 흥선대원군의 형인 이하전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안동김씨는 원범을 택하였다. 왕실의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 순원왕후 김씨는 원범을 자신의 양자로 삼아 왕으로 지명하였다. 철종의 나이 19살 때다. 14살에 강화에 왔으니 5년 만에 왕이 되어 돌아간 것이다. 그렇다면 철종이 살았던 집터 용흥궁과 외가댁이 풍수지리적으로 길지일 수도 있다. 용흥궁은 강화 주산인 송악산의 맥이 성공회강화성당을 거쳐 내려온 곳에 위치한다. 집 뒤가 높고 앞이 평탄한 것으로 보아 용맥의 끝자락에 해당되는 곳이다.

철종 외가의 주산은 혈구산(460m)이다. 혈구산에서 찬우물 방향으로 내려온 용맥은 현무붕을 세우고 남쪽으로 맥을 하나 뻗었다. 이 맥이 철종 외가까지 이어지는 입수룡이다. 입수룡은 모체의 태반에서 태아의 배꼽까지 연결되는 탯줄에 비유된다. 탯줄을 통해 모체로부터 영양분을 태아에게 공급되듯 입수룡을 통해 주산의 생기가 혈에 공급된다. 혈의 크기는 입수룡의 변화 상태를 보고 판단하다. 이곳 입수룡 변화 상태는 활발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대혈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입수룡이 분명하게 연결되고 그 끝자락에 있다는 점에서 혈이 분명하다. 혈의 진위 여부를 따질 때는 입수도두의 존재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집이나 묘 뒤의 볼록한 부분으로 태아의 배꼽에 비유되는 부분이다. 용맥을 따라 전달된 생기를 최종적으로 혈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구분이 어려울 때는 입수도두에서 물이 좌우로 갈라지는지 여부를 살피면 된다. 비가 온다고 가정하고 두 갈래로 물이 갈라지는 분수지형이면 입수도두라 할 수 있다. 좌우로 갈라진 두 물은 반드시 혈 앞에서 합수해야한다. 만약 합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는 한 곳에 모이지 않고 흩어져 버린다. 철종 외가 앞은 평탄한 들판으로 입수도두에서 갈라진 물이 합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보이는 산들은 모두 철종 외가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산이 감싸면 바람을 막아 주므로 기가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산들의 모양도 반듯하고 순하다. 산세를 보고 어떤 인물이 날 것인가를 판단하므로 성품이 순한 사람을 배출할 것으로 판단된다. 앞의 들판을 풍수에서는 명당으로 부른다. 평탄하고 원만한 명당을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여긴다. 이곳의 명당은 바다를 매립한 곳인 만큼 평탄하기 그지없다. 다만 원만하지는 않고 집터에 비해서 커 보이는 것이 흠이다. 결론적으로 철종 외가는 혈은 혈이되 대혈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