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농락 당하고 있나? 촛불과 태극기 집회가 서서히 변질되는 것을 보면서 생긴 의구심이다. 광화문과 시청에서 벌어지는 군중 대결이 ‘심리적 내전’ 수준을 넘어 각각의 겁박으로 치닫고 있어서다. 태극기 집회에 모인 친박단체가 원하는 것은 극(極)과 극의 대립과 분열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탄핵 조작 등’ 허술한 유언비어 등을 통해 나라가 극도로 분열된 것을 보면서 친박내에 진(진실된)박을 가장한 내부의 적인 가짜 진박(종북 세력·스파이), 즉 막후 기획자가 섞여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가(假)박의 각본대로 태극기집회는 극우로, 촛불진영은 극좌로 치닫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최근 태극기 집회는 ‘계엄령이 답’ ‘애국폭동이 진리요 생명’이라고 쓰인 선전물이 난무한다. 촛불진영의 주제는 “사드 배치 반대” “한·미 고위급 협의 중단” “이석기 석방” 등으로 어긋나기 시작했다. 결국 친박 내부의 진박의 탈을 쓴 가박의 교란, 기만, 격장지계 등에 진박이 현혹되는 모양새다. 이 기획자는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이들을 보며 속으로 히죽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종국에는 가박이 펼친 결계에 갇혀 보수·진보는 물론 국민 모두 피해자가 되는 구조다.

광화문에 태극기를 펼친 친박진영은 시대인식을 명확히 해야한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은 잘못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지부터 따져봐야한다. 태블릿 PC 등 모든 것이 조작됐고, 박근혜 대통령이 함정에 빠졌으며 최순실 존재자체가 허구고 권력의 사유화와 비선실세는 역사를 같이했다하더라도, 민주주의 등 사회·시대적 변화를 감지 못한 것부터가 국정운영실패의 단초다. 친박내에도 배신자라는 말이 넘처나는 것을 보면 인재 등용에 패착했고 불통으로 기인한 국정운영 실패와 민의를 반토막 낸 것 자체가 최고통수권자로서의 최대 실정(失政)이다. 친박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의 무능과 비열을 방치한 것도 큰 죄다.

구한말 패망은 혼용무도하고 무능한 지도자와 지도층이 원인이었다. 구한말 20여년 간 왕실의 고문이자 외교관으로 활동한 HN 알렌의 일기-구한말 격동기 비사 등 외국인의 저서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고종은 병적으로 미신에 빠져 있으며, 1895년 갑오개혁 기간 중 궁중에서 쫓겨났던 무당들이 궁중의 모든 일에 영향력을 미치고 국고(國庫)로 들어가야 할 세금까지 가로챘다.”(알렌 주한 미국 공사). “아시아에서도 한국은 구제가 불가능한 국가다. 고종은 열강 사이의 분열을 이용해 독립을 유지하려는 나약한 거간꾼이고, 양반 계층은 음모를 통해 사적(私的)인 이익을 추구하는 ‘사익(私益) 집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치권을 포기하고 대신 일본의 지배를 수용해야 한다.”(윌라드 스트레이트 서울·심양 주재 미국 부영사 및 총영사) “고종은 가장 어리석은 인물이며, 나라를 다스리는 유일한 기술이란 적대적인 세력을 대립시켜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보호하려는 것뿐이다. 그 결과 고종은 국제 정세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망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조던 주한 영국 총영사)

한국이 일본의 지배를 수용해야한다고 할 정도로 외국인들에게 있어 구한말은 피폐했던 것이다.

구한말 외국대사 등이 바라본 그 시대상과 지금은 우리는 무엇이 다른가. 지금 한국은 주한 주일·주미대사 조차 없는 나라다. 경제 안보,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위기징후가 나타나는 데도 부화뇌동한 정치꾼과 상황을 악화시키는 정상배들, 국민까지 링에 올라 치고박는 모양새다. 위험이 닥쳐오는 상황에서 그들끼리 싸우는 나라, ‘이게 나라냐’는 탄식이 나오는 나라다.

구한말 서민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현 대한민국 국민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분열되기위해 힘을 허투로 쓰고 있지 않은지, 자신을 위해 써야할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한다. 어느 진영이 정권을 유지하더라도 나라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기울지 않는지 고민해야한다. 극단적 정쟁이 계속되면 국민의 등골은 휘고, 나락으로 추락할 것이다. 불손한 의도를 가진 기획자들에게 안방을 내줘서는 안된다.

진·보가 진정한 가치를 발현시키려면 선거를 통해 심판하면된다. 선동이 아닌 법과 사회규범을 따르는 것이 항상 진정한 진·보의 가치였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최선을 다할 때다. 병입고황은 막아야한다. 때가 늦으면 4차 산업혁명은 고사하고 3차의 문턱도 못넘을 수 있다.

김만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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