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법(曆法)에서 비롯된 입춘은 북풍이 불어 언땅을 녹이고 동면(冬眠)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농사준비를 하는 날이라 전해 오고 있다 꽁꽁얼어 붙었던 대지(大地)위에 희망의 새움이 싹트는 입춘이 왔다. 음력24절기의 하나로 양력으로는 2월 4~5일에 해당 한다 설날이 지난지 8~9일 정초에 있게 되며 윤달이 있을때는 섣달에 들어있을 때도 있다 입춘에 접어들면서 낮의 길이가 하루가 다르게 길어지고 있다 겨우내 속으로 재우고 재웠던 꽃샘 추위가 있는가 하면 겨울의 끝자락을 장식하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우리의 힘든 삶을 보면 눈보라가 거세게 부는 겨울 아무도 찾지 않는 음지의 비탈에 힘들게 서있는 나무가 어떻게 사는지를 본다 나무는 언제나 현실이라는 땅을 딛고서 높은 하늘의 이상을 향한다 나무는 한순간도 땅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야만 온갖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추운 겨울 잎새의 봄을 준비하듯 얼었던 뿌리의 아픔을 이어져온 생존의 힘은 언제나 밖이 아니라 안에서 솟아야 했다 생존의 아픔으로 흘리는 눈물이 깊고 깊은 가슴을 가득 채워 밖으로 넘쳐 나올지라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지 않고 살 수 있는 법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듯 우리 선조들은 입춘날은 봄이 찾아든 날이라 하여 농사 차비(差備)에서 중요한 것은 씨앗을 마련하고 거름을 장만하여 농기구를 닦고 수리해가며 준비하는 것이었다 씨앗 마련에서 중요한 것은 씨앗 가운데 잡종이 섞이지 않게 하고 그것이 부패 변질되거나 얼거나 좀이 나지 않도록 잘 보관하며 알알이 잘 여문 이삭의 씨앗을 골라 두었다 희망의 새봄은 즉 입춘의 봄을 세우는 자세와 준비가 있어야만 우리에게 가을의 풍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같은 진리를 간파하고 입춘첩(立春帖)을 붙이고 남몰래 공덕을 쌓았다 입춘날 봄 행사의 중요한 것은 기둥과 대문간 부엌과 천정 그리고 각 방문에 춘첩자(春帖字)라 하여 새하얀 종이에 봄을 맞는 경사스러운 날 붓글씨를 써 붙였다 이에 대해 열양세시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항간(巷間)과 저자거리 점포(店鋪)들에서 모두 흰종이를 오려 입춘이란 두 글자를 써서 기둥이나 문에 붙이며 혹은 입춘이라는 글자 대신 시(詩)와 산문(散文)으로 행복을 축원하는 의미의 글을 쓰는데 마치 대궐에 붙이는 춘첩자의 봄의 축하의 글로 봄이 오자 행복이 오고 철따라 경사가 많다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만가지 복이 온다 등 이었다 이처럼 춘첩자의 봄 축하 글들에는 봄에 복을 맞는 백성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었다 승정원(承政院)에서는 초제(招提)문신과 시종신들에게 궁전 춘첩자를 저술케 하였다 이때에 패를 내려 제학(提學)을 초치(招致)하여 운(韻)을 내리고 채점을 하도록 하였다 설날의 연상시(延祥詩)와 단오첩(端午帖)에서도 이러한 예를 따른다 수여산복여해(壽如山福如海)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등 대저(大抵) 사대부들은 새로이 글을 지어서 쓰거나 또 옛사람들의 귀감이 될 수 있는 말들을 인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입춘날로 맞아 온 것은 고려때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것은 고려사를 비롯한 옛 문헌들에서 춘번자라 기록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이날 봄맞이 행사를 마을마다 새해에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의식 행사로 소(牛)모형을 만들어 밭갈이에 빛의 씨앗으로 씨뿌려 풍년을 기원하는 농사짓기 재현 행사를 하였다 그러나 선조들이 남겨 놓은 진솔한 봄의 희망은 어디로 가고 혼란과 갈등속에 몸살을 앓고 있다 차가운 분노의 계절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따스하고 정직한 세상에 희망의 새봄을 맞이하고 싶다.

이명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향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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