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에 등장하는 의학 관련 그림 중 토마스 에이킨스의 '에그뉴 박사의 임상강의'는 의사의 사회적 지위를 영웅처럼 묘사한 그림으로 평가받는다면, 루크 필즈의 <의사>는 환자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의사로서 의무를 다하는 진정성이 담긴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 루크 필즈, ‘의사’ 1891, 166.4×241.9cm, 캔버스에 유채, 테이트 미술관, 런던
루크 필즈의 ‘의사’는 그려진지 120년이 넘었지만, 의사 모습의 상징처럼 회자되는 그림이다. ‘의사’는 필즈가 의사를 주제로 한 그림을 의뢰받은 후 고민 끝에 자신의 둘째 아들이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사망했을 때 마지막까지 아들을 돌봤던 의사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림을 보면 첨단 의료도구 발전과 신약의 발명에 힘입어 환자를 돌보는 오늘날 의사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한손으로 턱을 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마치 지켜봐 주는 것이 최선의 치료인 듯. 창밖으로 흘러들어오는 새벽빛으로 미루어 밤새 어린 아이 곁에서 떠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환자를 돌보는 헌신적인 의사의 모습에 감동한 사람이 많아서인지, <의사>는 진실한 의사하면 떠올리는 대표 그림이 되었다. 실제로 <의사>는 포스터, 달력, 우표 등에 인쇄되어 대중에게 사랑받는 그림이 되었다.

의학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한 온갖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지켜내기 위한 끝없는 연구의 과정이다. 질병으로부터 인간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의학은 수많은 성과를 이뤄냈다. 그러나 눈부신 발전만큼 퇴색한 부분도 없지 않다. 오늘날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구호소, 순례자의 쉼터, 노인들의 보호소, 환자를 위한 진료소’ 등 그야말로 ‘자비를 위한 사회적 공간’으로 출발했던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망각한 병원이 적지 않다. 특히 예뻐지기 위한 갖가지 성형, 젊음 유지를 위한 시술 등 누군가의 욕구를 채워주고,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된 의사들이 적지 않다. 현대사회에서는 의사로서의 숭고함과 위신을 쉽게 내팽개치는 일부 의료행위로 의술의 가치가 무너지는 씁쓸한 일들이 속출한다.

루크 필즈의 ‘의사’를 보면서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을 바탕으로 환자에게 이로운 섭생의 법칙을 지킬 것이며, 심신에 해를 주는 어떤 한 것들도 멀리하겠노라…나는 삶과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유지할 것이다’라고 했던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시대를 초월해 의사들의 기본윤리 정신으로 살아있는 사회를 그려본다.

변종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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