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8월 어느날.

동네 꼬맹이들이 골목길 구석구석을 돌며 뛰어놀고 있다. 그렇게 30여분을 뛰어놀던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듯 동사무소가 있는 큰길을 향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뛰어간다. 목적지에 도착한 아이들은 잠시 숨을 고르며 한 곳을 응시한다.

잠시 뒤 동사무소 옥상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나오는 애국가에 맞춰 아이들은 땟국물이 흐르는 손바닥을 바지에 쓱쓱 문지른 후 오른손을 왼쪽가슴에 댄다.

당시를 살았던 필자 혹은 이전세대 사람들에게 태극기는 친숙함보다 경건 그자체였다. 물론 그때의 강요된 일원화 정책을 그리워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어린 필자의 눈에는 태극기가 그렇게 보였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경건하게만 보였던 태극기가 2002년 월드컵때를 기점으로 우리들 곁으로 친숙하게 바짝 다가왔다.

전 국민이 응원가를 부르며 손에 든 태극기를 흔들었다. 대형 태극기가 거리를 뒤덮었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할것없이 얼굴이나 몸에다 태극기 페인팅을 하기도 했다. 적어도 그 때만큼은 태극기와 온 국민이 하나가 되었다. 시대와 배경은 달라도 태극기와 국민이 하나된 때는 이전에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날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며 비폭력 만세운동을 시작한 1919년 3월1일이다.

태극기는 예전에도 지금도 전 국민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다.

이런 태극기가 처음으로 논의된 때는 1876년(고종 13)1월이었다고 한다. 운양호사건을 계기로 한 · 일 사이에 강화도조약 체결되면서 일본이 ‘운양호에는 일본국기가 게양돼 있었는데 왜 공격했느냐’고 트집을 잡았다.

하지만 당시 왕조국가인 조선은 ‘국기’라는 개념을 몰랐다.

이 일이 계기가 돼 국기제정의 필요성이 활발히 논의됐다. 1882년 8월 9일 수신사 박영효 등 일행이 인천에서 일본 배를 타고 도일할 때 당장 게양해야 할 국기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조정에서 대략 정해진

국기 도안내용을 수정해 태극사괘의 도안이 그려진 기를 만들었다. 이들 일행은 8월 14일 일본 고베(神戶)에 도착해 숙소건물 지붕 위에 이 기를 게양했는데, 이때 게양된 국기가 태극기의 효시로 알려졌다.

이후 조정에서 1883년 정식으로 국기로 채택, 공포했고, 대한민국이 수립된 후 1949년 문교부에 심의위원회를 설치, 음양과 사괘의 배치안을 결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 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로 구성돼 있다.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

내고 있다. 가운데의 태극 문양은 음(陰 : 파랑)과 양(陽 : 빨강)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네 모서리의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효(爻 : 음 --, 양 ―)의 조합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 가운데 건괘(乾卦)는 우주 만물 중에서 하늘을, 곤괘(坤卦)는 땅을, 감괘(坎卦)는 물을,

이괘(離卦)는 불을 상징한다. 이들 4괘는 태극을 중심으로 통일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이 생활 속에서 즐겨 사용하던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태극기는 창조와 번영을 희망하는 우리민족의 이상을 담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 98주년을 맞은 삼일절은 태극기가 둘로 나뉘어진 양상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시민들이 삼일절날 태극기를 게양하는게 불편하다는 내용의 목소리도 담았다.

이같은 일이 벌어지게된 배경에는 지난해 발생한 최순실 비선사태에서 박근혜대통령 탄핵사태까지 이어져 오면서 부터다.

실제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언제부터인가 탄핵을 반대하는 단체에서 여는 집회는 ‘태극기집회’로 명명하고 있다.

이때문에 태극기가 친박 또는 박근혜대통령의 상징으로 여겨져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에게는 삼일절날 태극기를 게양하면 탄핵에 반대하는 것으로 비춰질까봐 불편해 하는 모양새다.

게다가 인터넷에 올려진 일부 사진또는 영상에서는 태극기가 길가에 훼손된 채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다. 3·1운동 때는 비폭력으로 일제에 저항했고, 해방 이후엔 자유와 민주주의 상징이된 태극기다.

내년 99주년을 맞을 삼일전에는 누구의 전유물이 아닌 대한민국 모두가 사랑하는 태극기로 되돌아 오길 기대해 본다.

신정훈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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